17년 만에 찾아온 기록
원/달러 환율이 1,500원을 돌파했습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무려 17년 만에 나온 기록인데요, 지난 3월 3일 야간 거래에서 달러당 1,506원까지 치솟았습니다. 당일 주간 거래는 1,485.70원에 마감했지만, 단기간의 급등은 시장의 불안감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같은 환율 급등은 중동 지역의 갑작스러운 지정학적 리스크가 직접적인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중동 불안과 달러의 '안전자산' 행보
환율 급등의 직접적인 불씨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한 데서 시작됐습니다. 이에 맞서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선언하면서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죠.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수송의 약 20%가 통과하는 중요한 해상 길목입니다. 이란이 이 길을 막을 경우 국제 유가가 치솟을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됐고, 실제 서부텍사스산(WTI) 원유 가격은 한때 9% 이상 급등했습니다.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이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고,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된 겁니다. 이런 불확실성 속에서 투자자들은 자금을 안전한 곳으로 돌리기 시작했고, 그 목적지로 선택된 것이 바로 달러였습니다. 달러의 강세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DXY)도 99점대를 기록하며 뚜렷한 상승세를 보였습니다.
파급되는 금융시장의 잔물결
환율 변동의 파장은 외환시장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달러 강세는 전통적인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금값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뉴욕상품거래소의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5,089달러로 전장 대비 4.2%나 급락했는데요, 이는 달러 가치가 오르면 달러 표시 자산인 금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주식시장도 불안했습니다. 뉴욕 증시는 장 초반에 크게 하락했으며, 다우지수와 S&P500 지수는 1.4% 내외의 하락폭을 기록했습니다. 결국 하나의 지정학적 사건이 환율, 원유, 금, 주가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자산 시장 전체를 흔들어 놓은 모습이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미 달러가 여전히 세계 최고의 기축통화이자 위기 때 투자자들이 가장 먼저 찾는 '안전자산' 지위를 공고히 하는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중동 정세의 향방이 환율을 비롯한 국내외 금융 시장의 가장 큰 변수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