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마자 소맥 4잔, 남자 팀장과 단둘이 노래방
지난해 10월, 광주소방본부 소속 20대 여성 소방관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였는데요. 유가족이 공개한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생전의 끔찍한 직장 생활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습니다. 술을 거의 마시지 못하는 체질에도 불구하고 회식자리에서 소맥 4잔을 원샷해야 했고, 취해서 열 번 넘게 토했는데도 집에 보내주지 않았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상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고인은 남자 팀장과 단둘이 노래방에 가자는 부적절한 요구를 받기도 했고, 개인적인 해외여행 중에도 현지 유명 커피와 양주를 사 오라는 사적 심부름을 강요받았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가기 싫은 회식에 억지로 끌려가 특정 직원만 차량을 가져오게 하는 등 부당한 대우도 반복되었다고 합니다.
사망 원인은 개인사라고, 감찰 요청은 5개월 넘게 묵살
사망 이후 광주소방본부의 대응은 또 다른 충격을 남겼습니다. 본부는 사망 면직서 공문에 고인의 상담 기록을 인용해 남자친구와의 관계 불안을 사인으로 적시했는데요. 이를 두고 유가족은 조직이 죽음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2차 가해를 저질렀다고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공문 내용이 내부 시스템에 공개되면서 장례식장까지 허위 사실을 듣는 등 모욕을 겪었다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유가족은 고인이 음주 강요와 갑질로 고통받았다는 근거를 갖고 감찰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광주소방본부는 5개월 넘게 이를 외면했고, 재조사를 약속하고도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결국 유가족이 직접 소방청을 방문한 뒤에야 지난달 감찰이 시작되는 어이없는 행정적 공백이 있었습니다.
국조실까지 나섰지만, 꼭 밝혀야 할 건 조직 문화
사건이 확산되자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구태의연한 공직 문화를 질타하며 국무조정실에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조사 주체를 소방청이 아닌 국무조정실로 지정한 건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대통령은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징계와 형사처벌, 민사 손해배상 후 구상 청구까지 포함한 최대치의 문책을 예고했습니다.
국무조정실은 12일 광산소방서를 방문해 현장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음주 강요 여부와 감찰 요구 묵살 과정이 집중적인 조사 대상이죠. 다만 소방공무원노동조합이 지적했듯 이번 사건은 단순히 몇몇 사람의 갑질 문제를 넘어선 조직 문화의 문제입니다. 음주 중심의 회식 문화를 바꾸고 독립적인 조사 시스템을 마련하는 등 실효성 있는 재발 방지 대책이 뒤따르지 않으면, 또 다른 비극을 막기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