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 떠난 '운동권 주지' 명진스님…종교·시민사회장으로 영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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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 전 수정 · 2026년 8월 24일 오후 7:02

발행: 2026년 8월 24일 오후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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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이 제주 해상에서 수영 중 심정지로 추정되는 사고로 입적했다. 봉은사 전 주지이자 불교 개혁파로 활동한 고인은 종단과 정권에 거침없는 비판을 제기하며 '운동권 주지'로 불렸다. 2017년 제적 처분을 받았으나 소송 승소로 9년 만에 승적을 회복했다. 장례는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치러지며, 안장지는 마석 민주열사묘역으로 결정되었다.

제주 바다에서 돌아가신 '운동권 주지'

명진스님이 제주 바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난 8월 22일 서귀포 해상에서 수영을 하던 중 심정지로 추정되는 사고를 당했는데요. 당시 착용한 장비는 일반적인 오리발과 수경에 불과했고, 외상이나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세수 76, 법랍 52년의 삶을 마감한 고인은 생전 바다 수영을 수행의 일환으로 여겼으며, 호흡의 중요성이 참선과 같다고 늘 이야기했습니다. 장례위원회는 일부 보도된 프리다이빙 사고설을 부인하며, 평소와 같은 수영 중 돌발적인 심정지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은 조계종의 전통적인 종단장이 아닌 이례적인 형태로 치러집니다. 영결식은 8월 25일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엄수되며, 다비식은 출가 본사인 충북 보은 법주사에서 거행됩니다. 이재명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안장지는 경기 남양주 마석 민주열사묘역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백기완 선생이나 전태일 열사가 잠든 곳에 고인을 모시기로 한 것은 그의 삶이 어느 편에 서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정입니다.

절은 절답게, 그러나 세상을 외면하지 않게

명진스님은 1969년 해인사에서 행자 생활을 시작한 뒤 반평생을 불교 개혁과 사회참여의 경계에서 보냈습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투신하고, 2006년 봉은사 주지로 부임하며 사찰 재정을 외부에 공개하고 종무회의에 신도들을 참여시키는 파격을 감행했습니다. 이런 행보 덕에 '운동권 주지'라는 별칭을 얻었고, 1,000일 기도를 통해 '절은 절답게'라는 구호를 외치며 불교 본질 회복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신념은 종단과의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고인은 조계종 총무원을 거침없이 비판하다 2017년 제적 처분까지 받았는데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고, 1·2심에서 모두 승소하며 약 9년 만에 승적을 회복했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정원 사찰 대상이 되기도 했고, 이후에도 4대강 사업, 국정교과서, 사드 배치, 비상계엄 사태 등 시대의 주요 현안에 목소리를 냈습니다. 보수 진영에서는 '좌파 스님' 혹은 '정치 승려'라고 비판받기도 했지만, 고인은 권력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것이 수행의 연장이라고 믿어왔습니다.

민주열사 묘역에서의 마지막 동행

명진스님의 장례는 특정 종교에 국한되지 않는 공동 장례위원회가 운영됩니다. 불교계뿐 아니라 천주교, 언론계, 여성계, 시민사회 인사들이 함께하는 유례없는 형식인데요. 이는 고인이 종단의 담장을 넘어 사회적 실천을 불교의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던 삶을 반영합니다.

장례위원회에 따르면 고인은 평소 백기완, 전태일, 문익환 목사가 있는 곳에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합니다. 이에 따라 49재 이후 마석 민주열사묘역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수행자로서의 삶과 시민으로서의 책임을 끝까지 분리하지 않으려 했던 이 한 사람의 마지막 여정은, 그가 남긴 메시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