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현장에서 문화의 장으로
탑골공원은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촬영지로 재조명되며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은 단순한 관광명소를 넘어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장소로 자리해 왔습니다. 1919년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 낭독 장소로 처음 계획되었던 곳이지만, 시위의 격렬한 확산을 우려한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역사의 현장이 되지 못한 채 남아있습니다. 고려 시대 흥복사, 조선 시대 원각사가 자리했던 이곳은 시대에 따라 그 의미와 모습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왔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서양인들이 '파고다 공원'이라 부르며 서구적 공원으로 변모했고, 고종 황제가 서울 최초의 근대식 공원으로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군사 정권을 거치며 원형이 훼손되는 아픔도 겪었죠. 지금은 국보인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유리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지만, 통풍과 결로 문제로 제대로 된 관람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독립운동가들이 보여준 두 가지 길
3.1운동을 앞두고 탑골공원에서 펼쳐질 뻔했던 독립선언식은 두 독립운동가의 상반된 접근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최남선이 작성한 독립선언서는 독립의 정당성을 추상적인 가치로 설명하며 일본과의 '원만한 해결'을 강조했습니다. 반면 신채호의 조선혁명선언은 일본을 '강도'로 규정하고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을 주장했죠.
이러한 이념적 차이는 두 사람의 인생轨迹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습니다. 최남선은 일제에 협력하는 길을 걸은 반면, 신채호는 무장투쟁 노선을 고수하다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특히 신채호는 병보석 기회가 왔을 때도 친일 인사가 보증인으로 서는 것을 단호히 거부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냈습니다. 두 사람의 선택은 독립을 이루기 위한 방법론에 대한 깊은 고민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변화하는 공원의 얼굴과 보존 과제
한때 노인들의 '천국'으로 불리며 바둑과 장기로 활기찼던 탑골공원은 최근 주변 시설 철거로 방문객이 크게 줄었습니다. 현재는 인근 무료급식소 운영 시간에만 사람들이 모일 정도로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공원 내에서는 소란스러운 행위를 막기 위해 바둑과 장기 등이 금지되기도 했죠.
종로구청은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원각사지 십층석탑의 새로운 보호 방안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12월 초에는 유리 보호각 내부를 개방해 시민들이 석탑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활기를 되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AI가 생성한 과거 탑골공원의 이미지를 통해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역사의 층위가 고스란히 담긴 이 공간이 단순한 유적지를 넘어 시민들이 찾고 싶은 공원으로 재탄생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가치 보존과 현대적 활용 사이의 균형 있는 접근이 필요해 보입니다. 오징어 게임 촬영지로서의 관심이 이 고민에 새로운 계기가 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