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을 거부한 비범함의 기록
뮤지컬 ‘렘피카’가 코엑스아티움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아르데코의 여왕’으로 불린 실존 화가 타마라 드 렘피카의 삶을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 토니상 3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는데요. 한국에서는 베테랑 배우 김선영이 타이틀롤을 맡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김선영은 이 인물을 두고 “평범한 사람이 만들어낸 비범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러시아 혁명과 세계대전이라는 격동의 시대, 모든 것을 잃고 파리로 망명한 한 여성이 생존을 위해 붓을 들고 결국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로 우뚝 선 이야기입니다. 그녀에게 그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동시에 절망 속에서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는 자아였습니다.
김선영은 이 역할을 위해 렘피카의 그림과 자료를 깊이 있게 탐구했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혁명으로 모든 것을 잃는 과정, 그리고 파리에서의 고군분투하는 삶을 이해하려 노력했죠. 그녀가 특히 공감한 지점은 ‘평범함에 대한 거부’였습니다. 30년 가까이 무대에서 활동한 자신도 스스로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김선영은, 렘피카가 보여준 생존을 위한 몸부림 속에서 배우로서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과 혼란의 이유
그런데 이 작품, 한국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선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렘피카의 삶 자체가 파격적이기 때문인데요. 특히 그녀가 남편과 동성의 뮤즈 라파엘라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은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매우 과감한 설정입니다. 김선영은 이 관계를 단순한 욕망을 넘어선 것으로 해석합니다. 예술적 갈망과 시대적 한계가 맞물린 복잡한 감정의 표현이라고 보는 거죠. 작품 전체가 렘피카의 ‘선택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안정된 가족을 지킬 것인가, 예술과 자유로운 사랑을 따라갈 것인가 하는 고뇌는 극의 핵심 동력이 됩니다.
김선영은 관객에게 완벽한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과거의 많은 작품들이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했다면, ‘렘피카’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물의 모순되고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관객 스스로 생각하고 해석할 여지를 남깁니다. “세상을 바꿀 수 없어. 나에겐 네모난 캔버스밖에 없다”는 렘피카의 대사는, 그녀의 한계이자 유일한 저항 수단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이러한 난해함이 일부 관객에게는 거리감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김선영은 철저한 해석을 통해 그 복잡함을 전달하려 노력했습니다.
부상 딛고 무대로, 배우의 생존 의지
이번 무대는 김선영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해 12월, 집에서 미끄러져 팔꿈치 골절 부상을 입었기 때문인데요. 프로필 촬영 전이었다면 출연이 어려웠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녀는 6개월간의 집중 재활을 통해 무대에 섰습니다. “렘피카가 저를 기다려주지 않았다면 재활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 작품은 그녀에게 강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재활 과정에서도 무대를 생각하며 힘을 냈고, 연습실이 없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남편 김우형 배우와 함께 연습실을 빌려 추가 연습까지 진행했습니다.
부상 극복은 배우로서의 생존 의지를 보여준 사건이었고, 이는 마치 렘피카의 생존 기록과 닮아있습니다. 극중 넘버의 난이도 또한 상당했습니다. 김선영은 ‘극악’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어려운 곡들이 많았지만, 동료 배우들과 웃으며 토로하며 극복해냈습니다. 어느덧 50대에 접어든 그녀는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한다고 전했습니다. 1999년 데뷔 이후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베테랑으로서, 이번 작품은 무대에 대한 열정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앞으로도 뮤지컬 무대는 물론 드라마,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배우로서의 스펙트럼을 넓혀갈 계획입니다. 김선영이 전하는 렘피카의 이야기는 6월 21일까지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