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국정자원) 대전 본원 화재 사고로 인해 600여 개에 달하는 정부 주요 시스템이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나흘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사고는 국가 정보 인프라의 근본적인 문제점과 관리 부실을 여실히 드러내며, 국민 생활과 행정 서비스에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화재 발생과 초기 대응의 어려움
사고는 26일 저녁, 국정자원 대전 본원 5층 전산실에서 리튬이온 배터리 이송 작업 중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화재 발생 5분 만에 119 신고가 접수되었으나, 신고자는 "못 꺼요"라며 진압의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소방당국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384개의 UPS(무정전 전원장치)용 리튬이온 배터리 팩에서 불꽃이 번지고 있었고, 할론 소화기 사용 후에도 재발화가 발생하는 등 진압에 애를 먹었습니다. 이는 리튬이온 배터리 특유의 '열폭주' 현상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경찰은 정확한 발화 지점과 원인 규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배터리 정밀 감식을 의뢰하는 등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드러난 시스템적 취약점과 관리 부실
이번 화재는 단순히 배터리 문제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국가의 핵심 정보 시스템을 관리하는 시설임에도 불구하고, 재해복구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647개 시스템 중 단 25개(3.9%)만이 재해복구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으며, 대전센터와 상호 백업이 되어야 할 공주센터는 시스템 복구 기능 없이 단순 백업만 담당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3년 전 카카오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3시간 내 복구 가능"하다고 공언했던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시스템 정상화까지 최소 한 달 이상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한, 화재의 진원지로 지목된 UPS용 리튬이온 배터리는 2014년 설치되어 제조사의 내구 연한(10년)을 1년 넘겨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지난해 6월 정기 검사에서 "교체 권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정기 검사에서 "정상" 판정을 받아 계속 사용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관리 부실 논란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국가 기관에서 보증 기간이 지난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민간 기관보다 훨씬 엄격한 관리가 필요했음을 지적했습니다. 더불어, 사고 발생 당시 서버와 배터리 간 간격이 60cm에 불과할 정도로 좁고, 데이터센터 용도로 설계되지 않은 임대 건물을 장기간 사용해 온 점 등도 화재 확산 및 진압 지연의 원인으로 꼽힙니다.
국민 불편 가중과 복구 노력
이번 사고로 국민신문고, 보건복지부 복지로, 행안부 정부24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600여 개의 행정·공공 시스템 가동이 중단되면서 시민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는 토지대장, 임야대장 등 부동산 관련 민원서류의 열람·발급 수수료를 시스템 복구 시까지 한시적으로 면제하고, 무인민원발급기 정상 운영 등의 조치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마비된 시스템들은 대구의 민관협력 클라우드 구역으로 이전하여 재설치될 예정이며, 정보자원 준비와 시스템 구축에 각각 2주씩, 총 4주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재발 방지를 위한 시스템 혁신 시급
이번 사태는 단순히 하드웨어 노후화나 관리 미흡을 넘어, 국가 IT 인프라의 전반적인 체질 개선이 시급함을 보여줍니다. 감사원 감사에서도 중요 시스템의 이중화 미흡, 장비 교체 지연, 내용연수 산정의 비현실성 등이 지적된 바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AI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국가안전망 구축과 함께, 예산 확보 및 효율적인 집행, 민간과의 협력을 통한 리스크 분산 등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정치적 공방을 넘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안전한 디지털 환경을 만들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 마련에 나서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