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공백 위에 놓인 약
정부가 임신중지 유도제 미프진(미페프리스톤·미소프로스톨)의 정식 도입을 공식화했습니다. 성평등가족부는 임신 9주 이내를 대상으로 내년 1분기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식약처가 수입 허가를 심사 중이고, 초기 2년은 의료기관에서만 처방과 조제를 허용한 뒤 법 개정을 거쳐 약국 조제로 단계적으로 넓히는 계획입니다.
문제는 이 결정이 7년째 이어진 입법 공백 위에 놓여 있다는 점입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모자보건법 개정은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현행법은 인공임신중절수술만 정의하고 24주 이내 특정 사유에만 허용하는데, 약물 도입은 식약처 품목허가로 가능해 법적 근거가 모호한 상태입니다. 허용 주수와 약물 사용 여부를 법에 담지 않으면 정부가 바뀔 때마다 합법과 불법 논란이 반복될 수 있습니다.
갈리는 목소리
여성단체는 도입을 환영하면서도 조건을 달았습니다. 9주 이내 처방과 의료기관 원내 조제 제한이 임신 사실을 늦게 알거나 의료 소외 지역에 사는 여성에게 문턱이 높다는 겁니다. 건강보험 급여화와 보호자 동의 요구 금지도 함께 요구했습니다.
반대로 종교계는 태아 생명권을 앞세워 도입 중단을 촉구합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낙태를 질서 있게 제도화하는 방식이라며 생명 경시를 우려했고, 프로라이프는 법률 정비가 먼저라고 주장했습니다. 의료계는 도입 자체엔 반대하지 않지만 부작용 대응 응급체계와 의료인 법적 보호 장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남은 숙제
상담 창구의 실효성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위기임산부 상담전화 1308에 임신중지 문의는 해마다 늘고 있지만, 안전한 방법이나 의료기관과 비용 정보는 안내되지 않습니다. 러브플랜 역시 의료기관과 수술비 안내가 금지돼 있습니다. 뉴질랜드는 보건부 사이트에서 거주지와 임신 주수를 입력하면 가까운 기관과 시술 방법, 가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결국 쟁점은 약을 들여오는 일이 아니라, 낳을 자유와 낳지 않을 자유를 함께 보장할 제도를 만드는 일입니다. 위기임산부 보호출산 지원이 한부모가족 빈곤율을 감당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입법과 상담 체계 정비가 뒤따르지 않으면 미프진 도입은 불안한 출발에 그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