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물가 두 축이 동시에 꺾이다
미국의 6월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물가지수가 예상을 깨고 동시에 둔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 한때 숨통이 트이는 듯했습니다. CPI는 전월 대비 0.4% 하락하며 2020년 4월 이후 약 6년 만에 가장 큰 낙폭을 보였고, PPI 역시 전월 대비 0.3% 하락하며 보합을 예상했던 시장의 기대를 완전히 벗어났습니다. 특히 휘발유 가격이 한 달 만에 12%나 급락한 것이 이러한 물가 안정의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는데요, 이는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 체결 이후 유가가 급격히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물가 지표가 잇따라 호조를 보이자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은 급격히 낮아졌습니다. CME 페드워치를 보면 7월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확률이 90% 가까이까지 올랐고, 한때 50%에 육박했던 금리 인상 전망은 한 자릿수로 떨어졌습니다. 이러한 기대감이 더해지면서 뉴욕 증시는 나스닥을 중심으로 일제히 상승 출발했고, 국내 증시 역시 코스피가 7,000선을 넘어서는 등 강한 반등을 보였습니다. 국고채 금리도 일제히 내려 3년물은 연 3.866%에 마감하며 채권 시장까지 안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반도체주의 화려한 기술적 반등
이번 물가 둔화의 최대 수혜주는 단연 반도체 업종이었습니다. SK하이닉스 ADR은 단숨에 27% 이상 급등하며 시가총액 1조 2천억 달러를 회복했고,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도 각각 8%와 10% 넘는 상승폭을 기록했습니다. 마이크론과 엔비디아 등 주요 AI 반도체 기업들 역시 일제히 강세를 보이며 시장의 위험자산 선호 심리가 되살아났음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급등이 모두 펀더멘털 개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분석이 적지 않습니다. 증권가에서는 시장이 과매도권에 진입한 상태에서 작은 호재에도 민감하게 반응한 기술적 반등의 성격이 짙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 투자자들이 극단적인 공포 심리를 보이며 저점에서 매도하는 패턴이 나타났던 점을 들어, 이번 상승이 일시적인 숨 고르기에 그칠 수 있다는 신중한 시각도 나옵니다. 향후 이달 말에 예정된 실적 발표와 AI 투자 우려 해소 여부가 진짜 시험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가 반등과 연준의 확고한 선
물가 안정에 대한 낙관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최근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미국과 이란의 무력 공방이 재개되면서 국제 유가는 다시 반등세를 보이고 있으며, 휘발유 가격의 상승이 6월에 나타난 인플레이션 둔화 흐름을 되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부텍사스산 원유는 다시 배럴당 80달러 선을 넘어서며 에너지 가격 불안이 재점화되는 양상입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케빈 워시 연준 의장은 하원 청문회에서 단 한 번의 지표만으로는 물가 안정을 확신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 높은 인플레이션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거듭 강조했으며,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도 근원물가가 높게 유지될 경우 추가 긴축을 검토해야 한다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연준은 시장의 기대와는 별개로 당분간 신중한 정책 기조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며, 투자자들은 유가와 중동 정세라는 외생 변수를 끝까지 주시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