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선 500m 앞의 비극
2026년 10월 11일 오전 8시 49분, 서울 종로구 관철동 청계천로에서 열린 '서울달리기' 하프코스에서 20대 여성 참가자 유지원 씨가 결승선을 500m 남긴 20.6km 지점에서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현장 의료진이 즉시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119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이송했지만,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다음 날 사망했습니다.
고인은 KAIST 대학원생으로 AI 반도체를 연구하면서 SNS에서 러닝 콘텐츠를 꾸준히 공유해 온 인플루언서였습니다. 올해 4월 열린 군산 새만금 마라톤 10km 여자부에서 우승할 만큼 실력도 갖췄습니다. 결승선을 눈앞에 둔 완주 직전의 사고였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컸습니다.
잇따르는 사고와 경고
사고는 이번만이 아닙니다. 같은 해 10월 19일 강원 춘천 산악마라톤에서도 40대 남성이 심정지로 숨졌습니다. 해외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이어졌는데, 미국 포틀랜드 마라톤에서는 24세 참가자가, 밀워키 하프마라톤에서는 36세 참가자가 각각 쓰러져 사망했습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 감독은 유튜브 채널 '영조형'을 통해 이 문제를 짚었습니다. 그는 충분한 훈련 없이 무리하게 대회에 나서는 것이 사고의 근본 원인이라며,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잘 뛰는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록과 순위에 대한 욕심, 그리고 SNS 과시 문화가 러닝 열풍과 맞물려 위험을 키운다는 지적도 내놨습니다.
안전 대책과 전망
통계를 보면 심정지 자체는 흔한 일이 아닙니다. 201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 마라톤·하프마라톤 참가자 2931만 명을 분석한 연구에서 심정지는 176건으로 10만 명당 0.60건이었습니다. 다만 사망률은 과거보다 크게 낮아졌는데, 신속한 심폐소생술과 자동심장충격기(AED) 보급이 생존율을 끌어올린 덕분입니다.
전문가들은 사전 건강검진과 위험 신호 인식이 중요하다고 조언합니다. 운동 중 가슴 통증이나 호흡곤란, 어지럼증이 나타나면 즉시 멈춰야 한다는 겁니다. 주최 측에는 코스 전반의 의료 지원과 장비 확보가 요구됩니다. 즐기기 위해 달리는 대회가 되려면 기록보다 안전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