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교착에 빠진 구조개편
정부가 연말까지 마감 시한을 정한 석유화학 업계 구조개편안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습니다.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에쓰오일 등 주요 기업들이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 문제를 두고 '누가 먼저' 감축해야 하는지를 놓고 치열한 눈치싸움을 벌이고 있는데요. 각사가 자사의 경쟁력을 강조하며 설비 감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올 4분기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정기보수에 돌입했는데, 업계에서는 이 같은 움직임이 정부의 구조조정안 발표에 따른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가 제시한 NCC 용량 18~25% 감축안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 마련이 사실상 멈춰선 상태입니다.
샤힌 프로젝트, 감축 논란의 중심
가장 첨예한 대립은 에쓰오일의 대규모 샤힌 프로젝트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습니다. 내년 하반기 상업 가동을 앞둔 9조 2580억 원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연간 180만 톤의 에틸렌을 추가 생산할 계획인데요. 문제는 자체 소비 가능한 물량이 132만 톤에 그쳐 나머지 48만 톤은 외부 판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일부 기업들은 샤힌 프로젝트도 감축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에쓰오일 측은 이 프로젝트가 감축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에쓰오일은 다른 업체들이 자사의 에틸렌 판매량을 고려해 감축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는 무임승차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새로운 대규모 설비 가동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업체들의 감축 부담만 가중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죠.
고부가가치 전환의 모호함
구조개편안의 또 다른 핵심 축인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에도 장애물이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고부가가치 제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구체적인 정의를 요구하고 있는데요. 기준이 모호하다 보니 기업들마다 자사의 제품을 고부가가치로 규정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석유화학 업계는 수요 감소와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에틸렌은 플라스틱, 자동차, 전자제품 등 다양한 산업의 기초 원료지만, 최근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설비 가동률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에쓰오일의 샤힌 프로젝트 가동이 본격화되면 에틸렌 공급 과잉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 중재 가능성과 향후 전망
업계 관계자들은 연말까지 전체 합의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대신 각 사가 개별적으로 계획안을 제출하면 정부가 이를 조율하고 중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보입니다. 정부는 구조개편안을 통해 석유화학 업계의 과잉 설비를 해소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전환을 유도해 경쟁력을 강화하고자 하는데요.
금융, 세제, 규제 등 다양한 지원책을 약속했지만,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협상이 계속 지연될 경우 정부의 강력한 중재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각 기업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만큼,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노력이 더욱 필요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