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보존론과 국제사회의 경고
서울 종묘 앞 초고층 재개발 계획을 두고 국민 10명 중 7명은 개발 제한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엠브레인퍼블릭 등 4개 기관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9%가 '종묘의 경관과 가치 보전을 위한 개발 제한이 필요하다'고 답했는데요, '도심 노후지구 재생을 위한 초고층 빌딩 개발 허용' 의견(22%)을 크게 앞선 수치입니다. 이는 종묘가 단순한 문화재가 아니라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한 소중한 유산임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연령대별로는 30대(73%)와 40대(83%)에서 개발 제한 의견이 특히 높았고, 20대와 60대에서도 60% 대의 높은 지지를 얻었습니다. 지역별로는 서울(66%)을 비롯한 전국 모든 지역에서 개발 제한 의견이 과반을 차지했으며, 정치적 성향과 관계없이 진보층 88%, 중도층 72%, 보수층 55%가 보존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오직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만 개발 제한(46%)과 허용(43%)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을 뿐입니다.
유네스코의 강력한 우려 표명
한편 국제사회에서도 경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과의 면담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라자르 일룬드 아소모 센터장은 종묘 앞 재개발에 대해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는데요, 세계유산영향평가(HIA) 실시를 공식 요청했습니다. 칼레드 엘에나니 유네스코 사무총장도 한국 정부의 해결 의지는 높이 평가하면서도 "영향평가 완료 전까지 고층 개발을 자제해달라" 고 당부했습니다.
유네스코 측의 우려는 지난 15일 한국 정부에 전달된 공식 외교문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운4구역 최고 145m 건설 계획이 종묘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에 미칠 잠재적 위협에 대한 충분한 검토를 요구한 것이죠. 이는 단순한 권고를 넘어 세계유산 등록 취소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는 중대한 경고로 해석됩니다.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의 첨예한 대립
현재 서울시는 세운4구역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을 통해 종로 방향 건물 높이를 55m에서 98.7m로, 청계천 방향은 71.9m에서 141.9m로 상향 고시한 상태입니다. 서울시 측은 도심 노후지구 재생과 활력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하는데요, 과도한 규제가 사업 지연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2009년부터 시작된 종묘 주변 개발 높이 기준 조정 과정에서 서울시의 일방적 고시 변경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유네스코가 세계유산구역 내 경관 보호를 위해 고층 건물 인허가를 제한하도록 명시한 점을 강조하며, 세계유산영향평가 실시를 촉구하고 있죠. 양측은 서로 "충분히 설명했다",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반복하며 실질적 소통 부재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2의 청계 장벽 우려와 해법 모색
이번 논란에서 과거의 사례가 주는 교훈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세운지구 재개발로 완공된 '힐스테이트 세운센트럴'이 90m 높이의 건물들이 청계천 변에 밀집하며 '청계 장벽'으로 불렸던 경험인데요, SNS에서는 종묘 앞 4구역 개발계획이 "제2의 청계 장벽"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높이 규제만으로는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합니다. 세운3구역 개발 당시 최고 높이 90m로 제한했음에도 상업지역의 높은 용적률을 채우기 위해 빽빽한 건물들이 들어선 사례가 대표적이죠. 역사도시의 품격을 지키면서 낡은 도심을 재생하는 종합적 접근이 필요합니다.
해외 사례에서도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파리, 런던, 교토 등 세계적 역사도시들도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등을 겪었지만, 꾸준한 공론화와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왔습니다. 종묘 개발 논란도 일방적 주장보다는 시민, 행정,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론의 장을 통해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내년 7월 부산에서 열릴 제4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를 앞두고 한국 사회의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