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함께 준비한 장례
고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2026년 10월 24일 오전 3시 30분 중앙보훈병원에서 향년 91세로 별세했습니다. 빈소는 서울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20호실에 마련됐고, 장례는 사흘간 치러진 뒤 27일 발인해 국립4·19민주묘지에 안장될 예정입니다.
장례는 대한민국헌정회와 4·19혁명공로자회 등이 주관하며,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습니다. 김민석 대표는 빈소를 찾아 “민주화의 큰 어른이셨습니다”라고 방명록을 남겼고,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와도 만나 민주화추진협의회 시절을 회고했습니다. 김현철 김영삼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과 한동훈 무소속 의원 등 여야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습니다.
고문과 투옥을 견딘 정치 역정
고인은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동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1960년 4·19혁명 당시 학생 대표로 활동했습니다. 1971년 신민당 소속으로 울산·울주 지역구에서 당선된 뒤 9·10·13·14·15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6선 의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박정희 정권 시절에는 10월 유신을 비판하다 보안사령부에서 고문을 당했고, 1980년 신군부의 5·17 조치 이후에는 의원직을 잃기도 했습니다. 이후 민주산악회와 민주화추진협의회 간사장을 맡아 민주화 운동을 이어갔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상도동계 핵심 인사로 불렸습니다. 문민정부 출범 뒤에는 민주자유당 사무총장과 내무부 장관을 역임했습니다. 1997년에는 대선 주자로 거론됐지만 뇌졸중으로 쓰러져 장기간 투병했습니다.
민주화 유산과 통합의 과제
김민석 대표는 최 전 장관이 부마민주항쟁과 5·18 정신을 잇기 위해 애썼다며 여야가 같은 민주화의 뿌리를 성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장동혁 대표의 공동장례위원장 참여도 여야가 민주화 유산을 함께 기리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한동훈 의원은 “최 전 장관이 없었다면 민주주의가 더 늦어졌을 것”이라고 추모했습니다.
고인은 부산 연제구의 첫 국회의원을 지내며 지역 행정중심지 발전에 기여해 ‘연제구의 아버지’로도 불렸습니다. 유족은 고인이 술기운에 ‘아빠의 청춘’을 부르며 자식들을 웃기던 따뜻한 아버지였다고 회고했습니다. 장례를 계기로 여야가 민주화의 공동 뿌리를 확인하고 협치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가 남은 관심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