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을 지운 경찰관, 104일 뒤 발견된 시신
제주 한림읍에서 실종된 장미란 씨가 신고 10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되면서 경찰의 실종 사건 처리 방식이 전면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담당 부 경장은 지난 5월 15일 실종 신고를 접수한 뒤 약 2시간 만에 대상자와 연락이 닿았다고 거짓말을 하고, 전산 시스템에 교통사고 사망으로 허위 입력한 뒤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심지어 실종 프로파일링 시스템에서 관련 자료까지 삭제해 다른 수사관이 기록을 볼 수 없게 만들었는데요. 이로 인해 초동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시신은 장 씨가 머물던 숙소에서 불과 400m 떨어진 야자수 농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만약 정상적인 수색이 이루어졌다면 훨씬 일찍 발견되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부 경장은 지난 7월 2일 접수된 60대 남성 실종 사건도 똑같은 방식으로 허위 종결했고, 이 남성 역시 8월 22일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경찰은 이 부 경장이 처리한 실종 신고 298건 전체에 대해 전수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8월 25일 구속영장을 발부받았습니다. 이와 함께 제주서부경찰서 지휘라인 4명도 책임을 물어 대기발령 조치되었습니다.
숫자로 보는 실종 사건의 사각지대
이번 사건이 특히 충격적인 이유는 단순히 한 경찰관의 비리 때문만은 아닙니다. 구조적으로 성인 실종자가 사법 체계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인데요. 매년 7만 건에 달하는 성인 실종 신고 중 98%가 단순 가출로 처리되며, 이로 인해 매년 약 1,500명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현행 실종아동법은 18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 치매 환자만을 대상으로 해 일반 성인은 법적 보호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실종 수사 부서는 경찰 내부에서도 대표적인 기피 조직으로 꼽힙니다. 찾아도 낮은 성과 평가를 받고, 찾지 못하면 무한 책임을 져야 하는 구조 탓에 우수한 인력이 배치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상급자 결재 없이 담당자가 임의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더해져, 개인의 일탈을 막을 교차 검증 장치가 거의 없는 셈입니다. 이번 제주 사건에서도 CCTV 영상이 자동 파기되어 핵심 단서가 소실된 것처럼, 초동 대응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전국이 들썩인 후폭풍과 남은 과제
사건의 파장은 제주를 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경찰청 지시로 각 시도경찰청은 최근 3년간 접수된 실종 사건 처리 과정에 대한 전수 점검에 착수했는데요. 경기도에서만 9만 6천여 건, 경남 1만 4천여 건, 대전세종충남 1만 5천여 건 등 엄청난 규모의 기록을 일일이 확인해야 해 11월까지 조사가 이어질 전망입니다. 특히 비대면 종결이나 변사 처리된 사례, 범죄 연루로 전환된 사건들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실종 사건 관리 시스템의 허술함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은 서장이나 감독관의 승인을 거쳐야 사건을 종결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중 확인 절차가 없었습니다. 이에 경찰청은 관리자 승인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국회에서는 일반 성인도 위급 상황 시 긴급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실종성인법 제정 논의가 계류 중입니다. 다만 성인의 경우 자발적 가출 가능성과 개인정보 보호 문제가 얽혀 있어, 인권 침해 요소를 최소화하는 세밀한 제도 설계가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