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을 넘어 돌아온 심훈의 글씨
광복절을 앞두고 항일 저항 문학의 대표주자인 심훈 작가의 친필 원고와 유품 59점이 조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에 거주하던 막내아들의 가족이 90년 동안 소중히 보관해 온 이 자료는 최근 국립한국문학관에 기탁되었는데요. 후손 심영주 씨는 할아버지의 작품은 원래 조국에 속한 것이라며,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는 곳에 남겨두는 게 마땅하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귀환은 7년간의 협의 끝에 이뤄진 성과입니다.
빨간 선이 증명하는 시대
이번에 공개된 자료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1930년 3월 1일에 집필된 시 '그날이 오면'의 원고입니다. 원고 곳곳에는 일제 검열 당국이 붉은 펜으로 그은 삭제 선과 '전면 삭제' 도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당시 얼마나 혹독한 억압이 가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심훈의 뜨거운 항일 염원과 이를 짓누르려 했던 일제의 검열 실태가 동일한 공간에 공존하는 희귀한 사례인 셈입니다.
국립한국문학관 임헌영 관장은 이런 검열 흔적이 그대로 남은 원고가 세계 문학사에서도 드물다며 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습니다. 이 외에도 농촌 계몽 문학의 대표작인 소설 '상록수' 초고와 1936년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소식을 듣고 쓴 '오오 조선의 남아여' 등도 함께 포함되었습니다.
조국의 것으로 돌아오다
심훈 작가는 1936년, 광복을 보지 못한 채 35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글씨와 정신은 90년이라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한국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요. 2019년에 문을 연 국립한국문학관은 지금까지 12만여 점의 자료를 수집해 왔으며, 이번 기탁을 통해 심훈 연구의 중심지 역할을 맡게 될 전망입니다.
후손들의 헌신과 문학관의 노력이 만든 이번 환수는 단순한 자료 회수를 넘어, 일제강점기 저항 문학의 맥을 이어가는 상징적인 계기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이 원고들이 학술 연구와 역사 교육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