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물가를 움직인 손
국세청이 설 명절을 앞두고 본격적인 세무조사에 나섰습니다. 조사 대상은 장바구니 물가를 흔들어온 독과점 가공식품 업체와 유통업체 등 14곳인데요, 총 탈루 혐의 금액만 약 5천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9월부터 이어온 대규모 단속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1~3차 조사에서만 103개 업체를 조사해 3898억 원의 탈세액을 적발하고 1785억 원을 추징한 바 있죠. 특히 국민 먹거리 분야 독과점 업체 3곳에서 전체 추징액의 약 85%에 해당하는 금액이 나와 눈길을 끕니다. 이런 대규모 조사가 잇따르는 배경에는, 단순한 원재료 상승을 넘어서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역주행하는 가격, 뒤처지는 국제 시세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밀가루입니다. 국제 밀 가격은 2022년 이후 하락세였지만, 국내 밀가루 가격은 오히려 지난 5년간 36%나 올랐습니다. 세무조사 결과, 이는 여러 업체가 가격과 출하량을 담합해 제품 가격을 44.5%나 끌어올린 데서 비롯된 것으로 드러났죠. 더 큰 문제는 이 과정에서 벌어진 탈세 행위였습니다. 일부 업체는 원재료 매입 단가를 부풀리기 위해 거짓 계산서를 주고받았고, 사주 일가의 장례비나 고급차 수리비 같은 개인 비용까지 회사 자금으로 처리해 경비로 인정받았습니다. 결국 소비자들은 국제 시세와 무관하게 오르는 가격을 부담해야 했고, 업체들은 그 이익에서 세금까지 회피하는 이중적인 이득을 챙겼던 셈입니다.
같은 패턴은 다른 식품에서도 반복됐습니다. 간장과 고추장을 만드는 샘표식품은 주요 원재료의 국제 가격이 하락했음에도 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제품 가격을 10.8% 인상시켰고, 영업이익은 300% 이상 폭증했습니다. 업체는 사주 자녀 소유 법인과의 거래를 통해 소득을 축소한 정황도 포착됐죠. 라면 업계 역시 300억 원대의 탈루 세액이 적발되며, 포장재(봉지) 가격 급등 등의 요인과 맞물려 소비자 가격 인상으로 이어졌습니다.
점유율 다툼과 유통비, 모두 가격에 싣다
맥주와 아이스크림 시장에서도 유사한 불공정 행위가 적발됐습니다. OB맥주는 시장 점유율과 매출을 높이기 위해 광고계약으로 위장해 판매점 등에 약 1100억 원의 리베이트를 지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막대한 리베이트 비용은 결국 제품 가격에 반영되어, 술값을 22.7%나 인상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또한 원재료 구매를 대행하는 특수관계 법인에 450억 원이 넘는 수수료를 지급해 이익을 나눈 정황도 확인됐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 제조사 빙그레의 경우에는 다르면서도 비슷한 수법이 쓰였습니다. 특수관계 법인에 물류비를 약 250억 원 과다 지급해 이익을 떼어 준 것으로 드러났는데, 이로 인해 200억 원대의 세금이 추징됐습니다. 이러한 유통비용의 불합리한 상승은 제품 가격 인상(25%)으로 직결됐고, 최종 부담은 여전히 소비자의 몫이 되고 말았습니다.
담합과 탈세, 끝나지 않은 고리
국세청은 이번 조사를 통해 담합이나 독과점으로 얻은 부당이익에 대한 세금 회피를 근절하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정거래위원회나 수사기관에서 담합 행위가 확인된 업체에 대해서는 즉시 세무조사를 착수할 계획이라고 밝혔죠. 하지만 이러한 조사가 일시적인 단속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속적인 감시와 제재 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문제의 근본은 특정 업체의 비윤리적 행위를 넘어, 시장 지배적 지위를 악용해 소비자 부담을 외면하는 구조에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칼국숫집 같은 자영업자부터 일반 가정까지, 장바구니 물가에 민감한 모두가 주목할 부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