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타민 주사'로 둔갑한 해독제
2023년 1월부터 2026년 8월까지 전국 의료기관에 공급된 킬레이션 주사는 53만1230회, 62억9300만원어치입니다. 그중 73.3%인 38만9470회가 동네 의원급으로 갔고, 금액도 46억1800만원이 의원에 납입됐습니다. 중증 중독 치료제가 1차 의료기관에 집중된 셈입니다. 지역별로는 서울 강남구가 1만7810개로 가장 많았습니다.
성분은 에데트산칼슘디나트륨입니다. 혈관 속 납을 소변으로 빼내지만 칼슘·칼륨·마그네슘 같은 필수 미네랄까지 함께 빠져나가 신장 손상과 전해질 불균형을 부를 수 있습니다. 세계보건기구는 혈중 납 농도가 70마이크로그램을 넘을 때만 투약을 권고하고, 미국 산업안전보건법은 예방적 사용을 금지합니다. 국내엔 처방 제한이 없어 항노화·피로 회복용으로 쓰여 왔습니다. MBC 보도에 따르면 2021년 이후 공급된 74만 개 가운데 납중독 환자에게 투여된 비율은 7%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울산 공장에서 드러난 강제 투약
문제가 터진 건 DN오토모티브 울산공장입니다.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비타민 주사'라며 킬레이션 주사를 정해진 날짜에 놓았고, 200여 명이 고혈압과 시야 이상, 혈뇨, 신장 질환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사전 선택권은 없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68건을 적발해 과태료 4620만원을 부과하고 납 과다 검출 공정에 사용 중지 명령을 내렸습니다. 건강진단 방해 혐의로 회사와 의료기관은 경찰에 넘겨졌습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대한 인권 침해"라며 강경 대응을 지시했고, 정부는 배터리 사업장 14곳으로 조사를 넓혀 허가 외 사용 제한과 광고 규제를 추진합니다.
측정값이 남긴 의문
국정감사에서는 2025년 상·하반기 1·2공장 납 농도가 모두 0.0180밀리그램으로 같게 나온 점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공정과 시기가 다른데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일치한 겁니다. 측정 자체의 신뢰성까지 흔들리는 대목입니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K2B 시스템은 측정값이 반복되거나 건강진단 결과와 어긋나도 자동 경고를 띄우지 못했습니다. 공단은 탐지 기능을 강화하고, 노동부는 위험 사업장을 선제적으로 찾아내겠다고 밝혔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근거 없는 효능 홍보와 부적절한 사용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보건복지부도 오남용 주의를 촉구하며 필요 시 행정지도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작업환경 개선 대신 주사로 수치를 관리해 온 관행이 어디까지 이어졌는지가 남은 쟁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