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테이블로 향하는 서한
미국과 이란 사이에 오랜 침묵을 깨는 접촉이 이뤄졌습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이란의 강경파 안보 수장인 모흐센 레자이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낸 겁니다. 월스트리트저널 등 주요 외신은 이 서한이 구체적인 평화안이 아니라 협상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틀을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전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중간선거 직후 이란에 대한 대규모 공격 가능성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여 왔습니다. 협상이든 결판이든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는 메시지를 반복해 온 셈인데요. 이번 서한은 그 같은 압박과 대화 제안이 동시에 작동하는 국면으로 읽힙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서한이 의료물자 지원을 위한 것이라며 협상 제안이라는 해석을 부인했습니다. 상황이 좋지 않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인데, 실제 서한에는 핵 문제 논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호르무즈를 둘러싼 조건부 카드
이란 쪽 움직임도 분주합니다. 레자이 사무총장은 26일 테헤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 튀르키예 고위 안보 관계자들과 회동했습니다. 이례적인 자리였는데, 그는 단 한 줌의 농축 핵물질도 이란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핵물질 이탈 방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경제 카드도 함께 나왔습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중재국들과 긴밀히 접촉하며 신뢰 구축안을 단기간에 이행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는데요. 미국이 해상 봉쇄를 풀고 자산 동결과 원유 수출 제재를 완화하면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열겠다는 조건입니다. 이란은 이 제안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입니다.
협상 주도권을 둘러싼 변수
적지 않은 변수도 남아 있습니다. 레자이가 대화의 전면에 나설 경우 그동안 이란 대표단을 이끌어 온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의장이나 아라그치 외교장관이 협상 테이블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강경파를 앞세운 접촉이 오히려 이란 내부의 주도권 다툼을 자극할 수 있다는 겁니다.
미국 안에서는 이번 접촉이 중간선거까지 상황을 관리하려는 성격이 짙다는 분석과, 협상 결과에 따라 대이란 공격 카드를 접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함께 나옵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공격 여부를 협상 결과와 유가 흐름에 따라 결정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대화의 문이 열린 건 분명하지만, 그것이 긴장 완화로 이어질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