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젖줄이 마르고 있습니다
2026년 8월, 유럽은 기록적인 폭염과 가뭄으로 전례 없는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빈과 바트 도이치-알텐부르크에서 41도를 넘는 역대 최고 기온이 잇따라 경신되었고, 이탈리아는 27개 주요 도시에 최고 수준의 폭염 경보를 발령했습니다. 중부 유럽을 관통하는 다뉴브강과 독일의 라인강은 수위가 역대 최저로 떨어져 우주에서도 그 흔적이 보일 정도라는 평가가 나올 만큼 심각한 상황입니다. 사실 다뉴브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80년 전 자폭했던 나치 독일 군함 잔해까지 수면 위로 드러나는 기이한 풍경까지 연출되었습니다.
이러한 가뭄은 단순한 자연재해를 넘어 유럽의 산업과 물류를 직접 위협하고 있습니다. 독일 라인강에서는 화물선의 적재량이 평소의 20% 수준으로 급감했고, 일부 구간에서는 운항이 아예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운송 비용은 한 달 전보다 3배나 뛰었으며, 프랑스수로공사 역시 여러 운하에 통항 폐쇄 조치를 내렸습니다. 당연히 이는 공급망 마비로 이어져 독일의 3분기 경제 성장률을 0.1~0.2%p 하락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원전까지 멈춰선 에너지 위기
가뭄의 여파는 에너지 안보 영역에서도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헝가리의 팍스 원전은 다뉴브강 수위 저하로 원자로 4기 중 3기가 가동을 중단했으며, 남은 1기도 설계용량의 절반 수준에서 간신히 운전 중입니다. 헝가리 정부는 전국적인 전기 절약 캠페인을 펼쳐 600MW의 전력 소비를 줄이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슬로베니아의 크르스코 원전 역시 사바강의 수온 상승과 유량 감소로 출력을 80%로 낮추었고, 루마니아의 체르나보다 1호기는 예방적 정지를 단행했습니다. 루마니아 당국은 심지어 수중 암반을 폭파하는 긴급 준설 작업까지 벌이며 냉각수 확보에 나섰습니다.
프랑스와 스위스의 원전들도 하천 수온 상승으로 출력 제한이나 가동 중단 조치를 받고 있습니다. 프랑스 전력공사는 론강과 가론강 등의 수온 상승을 이유로 여러 원전의 출력을 낮추거나 일시 중단했습니다. 물론 원전 자체의 물리적 안전성에는 이상이 없는 상태입니다. 다만 기후 변화가 냉각수 확보와 방류 여건을 악화시키면서, 설비가 정상이라도 출력 조정이 불가피해지고 있는 겁니다.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해수 냉각 방식을 쓰는 국내 원전들의 해파리 유입과 해수 온도 상승 리스크를 점검하며 대응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물류 마비와 농업 피해, 그리고 기회
극한 기후는 농업과 자연에도 깊은 상처를 내고 있습니다. 영국의 곡물 수확량은 1984년 이후 최악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며, 프랑스와 스페인, 알바니아, 그리스 등에서는 대규모 산불이 잇따라 수천 헥타르의 농경지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바티칸은 교황의 일반 알현 행사를 실내로 옮기는 등 일상생활의 변화까지 강요되고 있습니다.
반면 이러한 유럽의 공급망 위기는 일부 산업에 예상 밖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독일 라인강 물류 마비로 BASF와 라이온델바젤 등 글로벌 화학 기업들이 불가항력을 선언하고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폴리우레탄 원료인 TDI와 MDI 공급이 부족해졌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의 한화솔루션과 금호미쓰이화학 등이 유럽 시장을 대체 공급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었고, TKG휴켐스도 원료 공급 확대를 통해 후방 수혜를 입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기후 위기가 전 세계적 재앙인 것은 분명하지만, 산업 지형을 재편하는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