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질긴 수사의 결실
20년 동안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서울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이 마침내 해결됐습니다. 2005년 6월과 11월, 신정동에서 발생한 두 건의 살인 사건은 피해자들이 쌀포대에 싸여 발견되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는데요. 경찰은 38명의 전담 수사팀을 구성하고 8년간 수사를 진행했지만, 범인을 특정하지 못해 2013년 미제 사건으로 전환해야 했습니다.
결정적 전환점은 2016년 미제사건 전담팀의 재수사에서 찾아왔습니다. 2020년 발전된 유전자 분석 기술로 두 사건 증거물에서 동일한 DNA를 확인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재개됐죠. 경찰은 23만여 명의 수사 대상자를 선정하고 1,500여 명의 유전자를 대조하는 대규모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생존자 중에서는 일치하는 DNA를 찾지 못해 결국 사망자까지 수사 대상을 확대해야 했습니다.
범인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
수사 과정에서 주목받은 인물은 당시 60대 빌딩 관리인이었던 장 모 씨였습니다. 그는 피해자들이 최후로 목격된 건물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했고, 성범죄 전과까지 있는 인물이었죠. 문제는 장 씨가 이미 2015년 암으로 사망한 상태라는 점이었습니다. 유골은 화장 처리되어 DNA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경찰은 장 씨가 생전에 치료받았던 병원 40여 곳을 탐문하며 검체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장 씨의 DNA는 두 사건 증거물에서 발견된 DNA와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범행 수법도 유사했는데요. 장 씨는 피해자들에게 "1층 출입구가 막혔다"는 거짓말로 지하실로 유인한 후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됩니다. 경찰은 피해자 시신에서 발견된 곰팡이와 모래 성분이 장 씨가 근무하던 빌딩 지하실 환경과 일치한다는 점도 추가 증거로 제시했습니다.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
이번 수사에서 흥미로운 점은 '엽기토끼 사건'과의 연관성이 최종적으로 배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006년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이 사건은 오랫동안 동일범의 소행으로 의심받아왔는데요. 경찰 조사 결과, 장 씨는 엽기토끼 사건 당시 이미 다른 성범죄로 수감 중이어서 범행이 불가능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로써 엽기토끼 사건은 여전히 미제로 남게 되었죠.
당시 수사 과정에서도 아쉬운 점들이 드러났습니다. 장 씨는 2006년 유사한 수법의 성범죄로 체포되어 3년간 복역한 적이 있는데, 당시 경찰은 이전 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교도소에서 동료 재소자들에게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고 자랑했던 장 씨의 발언도 주목받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고 합니다.
남겨진 교훈과 과제
이번 사건 해결은 과학 수사 기술의 발전과 경찰의 끈질긴 추적이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20년 전에는 검출하지 못했던 미세한 DNA 흔적이 오늘날에는 결정적 증거로 작용할 수 있게 된 것이죠. 하지만 범인이 이미 사망해 형사처벌이 불가능해진 점은 여전히 안타까움으로 남습니다.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장기 미제 사건 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사건을 통해 우리 사회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미제 사건들이 많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드러났는데요. 유전자 데이터베이스의 확충과 과학 수사 기술의 지속적 발전이 앞으로도 이런 사건들의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