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은 높았지만 절박함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이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이면서 축구계 전체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체코를 상대로 첫 승을 거뒀지만 멕시코와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연달아 패배하며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첫 대회에서 토너먼트 문턱조차 넘지 못했는데요. 영국 방송인 피터는 한국 선수단의 몸값이 남아공보다 5배나 높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력이 매우 실망스럽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감독과 협회 책임만이 아니라 기회를 결과로 바꾸지 못한 선수들의 책임 역시 크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통계적으로도 선수들의 결정력 부족은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한국은 A조 4개 팀 가운데 기대 득점(xG) 수치가 가장 높았는데도 실제 득점은 고작 2골에 그쳤습니다. 이는 감독이 득점 기회를 만들어냈음에도 마무리를 해내지 못한 선수들의 문제가 크다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들이 조 1위 확정이나 탈락 확정과 상관없이 끝까지 투혼을 발휘한 것과 달리, 한국은 가장 중요한 순간 날카로움과 절박함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감독만 바꾸면 끝일까, 구조적 실패의 덫
물론 책임은 선수들에게만 돌릴 수 없습니다. 홍명보 감독이 사임하고 정몽규 축구협회장과 박항서 부회장까지 물러나면서 상징적인 인물들은 자리를 내려놓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퇴가 끝이 아니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전력강화위원회(전강위)가 월드컵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하기보다 신임 감독 선임에만 급급하다는 비판이 거세게 나오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런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 축구는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똑같은 패턴을 반복해왔습니다. 실패 후 사과문을 발표하고 감독을 교체한 뒤 기억과 데이터를 지우는 일종의 '리셋'을 반복하는 것인데요. 벤투 감독 체제에서 구축한 후방 빌드업과 점유율 중심의 전술은 클린스만, 홍명보 체제를 거치며 사실상 단절되었고, 이전 대회의 오답 노트를 축적하는 시스템은 없었습니다. 전강위가 실패 원인에 대한 낱낱이한 리뷰 없이 감독만 바꾸는 역할에 머문다면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을 외치기 전에 멈춰 서야 할 이유
당장 시급한 과제는 성인 대표팀 문제만이 아닙니다. 9월 아시안게임을 앞둔 U-23 대표팀 역시 이민성 감독 체제 아래 경기력 난조를 보이고 있어, 파리 올림픽과 월드컵에 이은 또 하나의 악재가 될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전강위는 이민성 감독 체제의 자격 유무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물론 변화가 필요한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변화가 관성적인 속도전이나 얼굴 바꾸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선수들이 소셜 미디어에서 쉽게 '다음'을 기약하기보다 왜 절박함이 부족했는지 성찰하고, 협회는 실패를 데이터와 경험으로 축적하는 연속성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 축구가 같은 곳을 맴도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