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생존을 건 공방의 시작
정부의 약가 제도 개편안이 오는 2월 국민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에 상정될 예정인 가운데, 제약업계가 총력 대응에 나섰습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최근 회원사들의 결속력을 다지고 대응 수위를 높일 것을 강조했는데요. 정부가 추진하는 약가 인하가 성사될 경우, 연간 최대 3조 6000억 원에 달하는 매출 손실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업계는 이 같은 충격이 연구개발(R&D) 투자 위축과 산업 경쟁력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에 제약업계는 즉시 약가 제도 개편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본격적인 대응에 돌입했습니다. 비대위는 국회와의 정책 토론회와 기자회견 등을 통해 개편안의 문제점을 알리는 한편, 한국노총 등 경제·노동계와도 연대하고 있습니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약가 개편이 노동자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하며 건정심 앞 1인 피켓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제네릭 인하와 자사몰 확산, 이중고에 시달리는 업계
구체적인 위기 요인으로는 두 가지가 지목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인 제네릭(복제약) 산정률 인하입니다. 업계는 기존 53.55%에서 40%대로 떨어질 것을 우려하며 서둘러 움직이고 있죠. 산정률이란 건강보험에서 부여하는 약값의 기준이 되는 비율입니다. 많은 제약사들이 6월 심사결과 통보, 7월 협상, 8월 고시라는 일정을 고려해 5월까지 급여 신청을 마무리하는 것을 '막차'로 보고 신제품 발매를 서두르는 모습입니다.
둘째는 제약사 자사 온라인몰의 급격한 확장입니다. HMP몰, 더샵, 바로팜 등 주요 온라인몰이 수백억에서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며 성장했지만, 유통업계는 심각한 위기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한국의약품유통협회는 제약사 온라인몰이 제공하는 다양한 할인과 포인트 혜택이 약사법상 허용 범위를 넘어선다고 지적했는데요. 과도한 혜택 경쟁으로 인한 비용이 결국 입점 도매업체로 전가되면서 오프라인 유통업체와의 불공정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겁니다. 유통협회는 이에 대한 법적 개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바이오 강국’ 비전과 충돌하는 정책 우려
가장 큰 논란은 정부의 약가 인하 정책이 이재명 정부가 추진 중인 ‘바이오 5대 강국’ 비전과 정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업계에 따르면, 제네릭 판매 수익은 국내 제약 산업 R&D 투자의 80% 이상을 담당하는 핵심 자금원입니다. 따라서 무리한 약가 인하는 신약 개발의 동력을 앗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일본에서 약가를 급격히 인하한 후 의약품 공급 중단 사태가 발생한 사례를 들며, 국내 의료 안보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경고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제네릭 산정률 개편을 통해 약가를 낮추고 건강보험 재정을 효율화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인하 수치와 세부 시행 방안은 아직 명확히 공개되지 않아 업계의 불확실성과 혼란은 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개편안이 전 정부에서 논의되던 초안을 재활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건정심의 최종 결정을 앞둔 지금, 산업 생태계의 변화를 가져올 이번 개편안이 향후 한국 제약·바이오 산업의 방향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