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의 백기
국세청이 고액·상습체납자 명단 1위였던 권혁 시도그룹 회장의 개인 체납 세금 3938억 원이 전액 납부된다고 밝혔습니다. 1990년대부터 일본과 홍콩 등지에서 170여 척의 선박을 운영하며 '선박왕'으로 불린 권 회장은 2011년 역외탈세 혐의로 4101억 원을 추징당한 뒤 15년간 세금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국 거주자가 아니라며 과세 처분에 불복했지만, 2024년 대법원은 비거주자라도 과세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소송으로 시간을 벌던 권 회장은 지난 7월 말 현금 1000억 원을 두 차례에 걸쳐 납부했습니다. 기존 고액 체납자 현금 납부 최고 기록이 500억 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번 납부는 국세청 개청 이후 최대 규모입니다.
압박의 실체
결정적 계기는 해외 자산 추적이었습니다. 국세청은 2023년 6월 특별세무조사에 착수하고 관련 법인에 2차 납부 책임을 물어 장부상 체납 지정액을 7902억 원까지 늘렸습니다. 이어 라이베리아, 파나마, 영국 등 과세 당국과 정보 교환과 징수 공조에 나섰고, 파나마와 라이베리아에 등록된 선박 5척을 담보로 확보했습니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방송 인터뷰에서 권 회장이 해외 압류 추진에 부담을 느낀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담보 선박의 평가액은 남은 체납액 2938억 원을 웃도는 수준으로, 선순위 채권이 없는 깨끗한 물건으로 확인됐습니다. 국내 재산이 없는 체납자의 해외 선박을 담보로 잡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감사원 사전 컨설팅도 병행됐습니다.
남은 과제
국세청은 권 회장의 개인 체납액이 완납되면 관련 법인의 체납 지정액까지 약 8000억 원이 소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임 청장은 세금을 모두 내고 한국에 돌아와 사업을 재개하라는 제안도 전했다고 합니다. 권 회장은 주변에 대한민국 경제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이 알려진 경로를 두고는 논란이 남습니다. 제보자가 18차례에 걸쳐 체납 사실을 알렸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다가 언론 보도 이후에야 수사와 징수가 본격화됐다는 지적입니다. 국세청은 고액체납 특별대응 TF의 성과를 정규 조직으로 확대해 전국 지방청에 세무조사와 체납 추적을 연계한 특별조사팀을 설치할 계획입니다. 법인 명의 슈퍼카나 고가 주택을 사적으로 이용하는 사주들에 대한 조사도 강화하겠다는 방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