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불안과 중국의 수요가 쌍끌이가 됐습니다
국제유가가 다시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습니다. 브렌트유는 104~107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100달러를 웃돌았습니다. 특히 우리 경제와 밀접한 두바이유 현물은 120달러까지 치솟았는데요. 이는 지난 7월 70달러 선까지 내려갔던 흐름이 한 달 만에 완전히 뒤집힌 겁니다.
이번 유가 급등은 공급 측과 수요 측이 동시에 압력을 가한 결과입니다. 먼저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가 극대화됐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갈등으로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홍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후티 반군의 교전이 격화됐습니다. 후티 반군이 바브엘만데브 해협 전략 요충지를 장악하고 사우디의 핵심 시설인 동서 파이프라인까지 공격받으면서 공급 차질 우려가 커졌습니다. 반면 중국의 원유 수입은 6월 612만 배럴에서 지난달 733만 배럴로 반등하며 수요 회복 신호까지 더해졌습니다. 공급 불안과 수요 회복이 겹치면서 유가 상방은 활짝 열린 셈입니다.
물가를 넘어 금리와 성장까지 위협하고 있습니다
유가 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미국 8월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3% 상승하며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고, 생산자물가지수(PPI)도 5.4%나 올랐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9월 금리 인상 가능성은 86%까지 치솟았습니다. 유럽중앙은행(ECB) 역시 물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정책금리를 인상하는 등 글로벌 긴축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달러 강세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달러-원 환율은 1,340원 중반대에서 한 주를 마감했으며,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5%를 소폭 상회했습니다. 국내 증시 역시 코스피가 7,000선을 내주며 불안감을 드러냈는데요. 현대경제연구원은 유가가 연평균 100달러를 기록할 경우 우리 경제성장률은 0.3%p 하락하고 물가상승률은 1.1%p 오를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물가와 경기 침체가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이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고가격제로 버티고 있는데요
국내에서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 급등을 막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가 시행 중입니다. 현재 휘발유는 ℓ당 1,784원, 경유는 1,773원으로 책정돼 있는데, 시장 가격과의 차액을 정부가 부담하는 구조입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다음 달 원유와 나프타 도입 물량을 지난해보다 90% 이상 확보했다며 단기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고유가가 장기화될 경우 상황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에 석유정제업자 손실보전 예산으로 1조 4,497억원을 편성했지만, 재정 부담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석유 최고가격을 유지하면 정유사 손실 보전에 따른 재정 압박이 커지고, 인상하면 소비자 물가가 자극되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항공권 유류할증료는 이미 미국 노선 왕복 기준 70만 원을 넘어섰고, 다음 주 발표될 10월 할증료는 더 오를 전망입니다.
물론 유가 하락 요인도 없는 건 아닙니다. 오만의 주선으로 걸프협력회의 6개국과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항 관리를 위한 임시 합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미국 내 시추 활동 증가도 공급 확대 기대를 높이고 있습니다. 다만 사우디의 송유관 공격 후속 보도와 IEA의 공급량 급감 보고 등으로 인해 상방 위험은 여전합니다. 당분간 국제유가는 100달러를 기준으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변동성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