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시장, 수익성의 축이 이동한다
메모리 시장에서 주목받는 화두가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인공지능(AI)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모든 관심을 받았다면, 내년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전망입니다. UBS를 비롯한 증권사들은 내년 2분기부터 일반 D램의 수익성이 HBM을 추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는 HBM 생산에만 집중해온 메모리 업계의 전략에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하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이러한 전망의 배경에는 뚜렷한 수급 불균형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메모리 업체들이 HBM 생산에 생산 능력을 집중하면서 전통적인 일반 D램의 공급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서버나 PC 등에서의 D램 수요는 여전히 견조합니다. 공급은 줄고 수요는 유지되는 구조에서 가격 결정력이 강화되며, 이는 곧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UBS는 특히 마이크론의 경우 내년 2분기 총이익률이 67%까지 상승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HBM의 성장은 멈추지 않지만, 새로운 국면으로
물론 HBM 시장의 성장이 주춤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키움증권은 내년 삼성전자의 HBM 출하량이 올해 대비 3배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며, AI 서버 시장의 확대를 그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Maia200, 구글의 TPU V7e 등 주요 AI 반도체의 HBM 탑재량이 늘어나고, 메타와 아마존도 새 장비에 HBM을 채택할 예정입니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막대한 신규 수요를 창출할 것입니다.
하지만 HBM 시장 내부에서도 세대별 가격 차이가 벌어지며 수익 구조가 다층화될 전망입니다. 내년 상반기부터 본격 양산될 HBM4는 현재 주력인 HBM3E 대비 28~58% 더 높은 가격에 거래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고성능을 요구하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GPU에 주로 탑재될 HBM4는 프리미엄 제품군으로 자리매김하며, 업체들의 수익성을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메모리 3사의 전략적 선택지
이러한 시장 변화는 글로벌 메모리 3사인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게 새로운 고민을 안깁니다. 지금까지는 HBM 생산 확대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일반 D램의 수익성이 더 좋아진다면 생산 라인을 어떻게 배분할지 전략적 재고가 불가피해집니다. LS증권의 차용호 애널리스트는 범용 메모리 업황이 호황을 맞으면 HBM 생산능력 확대에 대한 업체들의 의지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업체들의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습니다. 삼성전자는 HBM4와 범용 D램에 집중하며 실리를 추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으며, SK하이닉스 역시 엔비디아 향 HBM 납품을 위한 생산 확장과 병행해 선단 D램 생산 능력 확대를 모색할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메모리 업체들은 HBM이라는 고부가가치 시장과 일반 D램이라는 대량 시장 사이에서 최적의 수익 포트폴리오를 구성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습니다.
호황의 이면, 숨은 수혜자는 낸드
흥미로운 점은 이번 메모리 시장 호황이 D램에만 국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입니다. 키움증권은 낸드 플래시 메모리 시장의 수급 불균형도 삼성전자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마이크론의 낸드 공급 감축과 엔터프라이즈 SSD(eSSD) 수요 증가가 맞물려 낸드 가격 상승이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D램과 낸드, 두 주요 사업에서 동시에 호재가 발생한다면 메모리 업체들의 실적은 탄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내년 메모리 시장은 단순한 수요 증가를 넘어 수익 구조의 재편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HBM은 고성능·고가격 제품군으로 진화하며 성장을 지속하는 한편, 일반 D램은 공급 부족으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주목받는 '다크호스'가 될 수 있습니다. 업체들의 전략적 생산 조정과 함께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움직일지 주목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