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조 시대 연 슈퍼예산, 반도체 호황이 이끈 대전환
정부가 내놓은 2027년도 예산안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총지출이 800조 원을 넘어서면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였는데요. 이런 팽창 재정의 배경에는 반도체 초호황으로 벌어들인 법인세와 증권거래세 증가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개선이 국세 수입을 크게 늘려 주면서 정부가 이른바 슈퍼예산을 편성할 여건이 마련된 겁니다.
당연히 정부는 이번 예산을 단순한 지출 확대가 아닌 생산적 재정 전략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잠재성장률 반등을 위해 반도체, 피지컬 AI, 데이터센터를 3대 메가프로젝트로 묶어 집중 투자하기로 했고, 반도체 특별회계까지 신설했습니다. 또한 프론티어급 AI 개발을 위해 GPU 1만 장을 공급하고 전력 및 용수 인프라 확보를 위해 한국전력과 수자원공사에 직접 출자하는 방안도 예산에 담겼습니다.
AI와 청년·지방에 집중된 5대 투자 체계
이번 예산의 핵심은 미래 산업과 세대 및 지역에 대한 전략적 투자입니다. 정부와 여당은 AI 및 3대 메가프로젝트, 미래 성장엔진 확충, 청년 단계별 지원, K자형 양극화 대응 및 지방주도 성장, 국민안전 강화를 5대 중점 분야로 선정했는데요. 특히 청년과 아동을 위한 직접 지원책이 눈에 띕니다. 만 18세까지 연간 최대 120만 원을 지원하는 우리아이 자립펀드가 신설됐고, 아동수당은 아동기본수당으로 통합 확대됩니다. 대학생 인턴 학기제 도입과 지방국립대 등록금 전액 지원도 예산안에 포함됐습니다.
지방 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선 앵커기업의 지방 이전 설비 투자를 돕는 성장엔진 특별보조금이 마련됐으며, 지방 미래성장지원금 신설도 추진됩니다. 이처럼 확장 재정의 방향은 명확하지만, 과거 사례를 보면 재정 확대가 반드시 높은 성장률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소득 재분배와 관련된 분배 지표 개선에는 기여한 경향이 있어, 이번 예산의 성패도 지출의 질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나랏빚과 물가 우려 속 재정 건전성 시험대
물론 800조 원대 예산을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만은 않습니다. 국가채무는 이미 1,400조 원대에 진입했고, OECD는 GDP 대비 부채비율이 2050년에 200%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시적인 반도체 호황에 기반한 초과 세수를 선심성 현금 지출에 쓰기보다 국채 상환에 우선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특히 한국은행이 통화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대규모 돈 풀기가 물가와 부동산 시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의무지출과 재정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50조 원대 절감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반도체 호황 세수의 변동성을 대비해 미래대응기금을 신설해 운용할 계획인데요. 하지만 한 번 늘어난 복지 및 의무 지출은 쉽게 줄이기 어렵다는 점이 향후 재정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슈퍼예산의 진가는 단순한 규모가 아니라, 미래 세대에게 부담을 덜어주면서도 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는 효율적 집행에서 검증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