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마저 전시로 남기로 한 남자
'인체의 신비전'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독일의 해부학자 군터 폰 하겐스가 뇌출혈로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아오던 그는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었는데요. 생전에 그는 누구보다 죽음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보여주었고, 이번에도 자신의 시신을 특수 보존 처리해 전시해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해부학을 대중에게, 그 이면의 그림자
사실 하겐스 박사는 시신을 반영구적으로 보존하는 '플라스티네이션' 기법을 개발한 인물입니다. 체액과 지방을 빼내고 실리콘이나 에폭시 같은 합성 물질을 채워 넣으면 마치 마네킹처럼 원하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되죠. 이 기술로 탄생한 '인체의 신비전'은 1995년 일본 도쿄를 시작으로 전 세계 500여 개 도시에서 5,80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모으며 해부학의 대중화를 이끌었습니다. 한국에서도 2002년 서울에서 첫 전시가 열렸을 당시 약 170만 명이 찾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습니다.
물론 그의 행보가 늘 환영받은 건 아닙니다. 일부 전시가 지나치게 자극적이라는 비판이 있었고,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죠. 특히 중국 사형수의 시신을 매입했다는 의혹이나 중국 내 시신 가공 공장 운영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덕적 논란은 더욱 커졌습니다. 2002년에는 영국 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공개 부검을 진행해 의사협회의 강한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하겐스는 이런 논란 속에서도 해부학의 민주화와 죽음에 대한 금기 타파를 주장하며 자신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죽음 이후에도 남은 질문
반대로 그의 유언은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화두를 던지고 있습니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을 존중해 시신 보존 처리를 이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는데요. 그는 한때 가디언 기고를 통해 보존 처리된 자신의 몸이 전시장 입구에 서 있거나 여러 곳에 나뉘어 전시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전했습니다. 죽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그의 메시지는, 살아있을 때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되새기게 만듭니다. 그가 남긴 건 단순한 전시물이 아니라, 과학과 윤리 그리고 죽음의 경계에 대한 끊이지 않을 질문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