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담 제안, 돌아온 건 침묵
국방부가 지난 23일 북한에 남북 군사당국 회담을 제안했습니다. 비무장지대 군사분계선 주변에서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기준선 설정을 논의하자는 취지였는데요. 필요하면 유엔군사령부를 포함한 3자 회담도 열 수 있다는 조건까지 달았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나흘째 아무 응답이 없습니다. 오히려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서한을 보내, 지난 21일 서부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을 "한국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22일 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데 대한 맞대응인 셈입니다.
같은 시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을 깜짝 방문했습니다. 신압록강대교 개통 직후였는데, 시진핑 주석과의 공식 회담 없이 하루 일정으로 다녀갔습니다.
유엔에서도 이어진 공방
남북의 신경전은 유엔총회 제1위원회 회의장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북한 대표부는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려 한다며 미국과 함께 핵전쟁 연습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한국 대표단은 한미 연합방위와 억제 태세가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맞선 정당한 방어 조치라고 반박했습니다.
북한은 또 서부전선에 자주포를 카메라에 잡힐 정도로 가까이 배치하고, 대남 확성기 가동 준비도 철회하지 않고 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부장이 군사분계선까지 내려와 대남 위협을 이어간 점도 대화 분위기를 가라앉히는 요인입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남한과 직접 마주 앉기보다 유엔과 미국을 상대로 협상력을 키우려는 것으로 봅니다. 통일연구원의 조한범 석좌연구위원은 회담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내다봤습니다.
국경을 국경답게 만드는 계산
북한이 대화에 응하지 않는 배경에는 '적대적 두 국가' 노선이 자리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23년 말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뒤 군사분계선 일대에 방벽을 세우고 지뢰를 매설해 왔습니다. 합동참모본부와 유엔군사령부는 이번 지뢰 폭발의 원인을 북한이 매설한 지뢰로 결론지었습니다.
국경화 작업은 안팎을 동시에 겨냥합니다. 내부적으로는 남북 격차가 벌어지며 생긴 주민들의 이념적 동요를 막으려는 목적이 있고, 외부적으로는 핵 보유를 지렛대 삼아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계산입니다.
정치권의 반응도 갈립니다. 국민의힘은 회담 제안을 '대화 구걸'이자 '굴종'이라며 비판했습니다. 장동혁 대표는 북한이 미사일을 17차례 발사하고 지뢰 96만 개를 매설했다고 지적했습니다.
국제 정세가 요동치는 가운데 북중·북러 관계는 오히려 단단해지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제지가 약해진 틈에 북한이 국방력 강화에 속도를 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당분간 북한이 대화 테이블로 돌아올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