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호황에 쏟아지는 돈, 이름부터 논란입니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기업들의 역대급 실적 호조로 정부 세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이른바 초과세수를 AI와 차세대 반도체 등 미래 전략산업에 투자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고 있는데요.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이 자금을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 쓰겠다고 밝혔고, 기획예산처는 전용 기금 신설을 추진 중입니다.
하지만 이 돈을 부르는 이름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막대한 기업 이익을 '초과이익'으로 규정하고 사회적 재분배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노동계에서는 협력업체 납품단가 조정과 사회연대 임금정책 도입을 제안했고, 삼성전자도 4천억 원 규모의 상생행사를 진행하며 논의가 가열되고 있죠.
반면 '초과이익'이라는 표현은 비정상적이거나 요행으로 얻은 이익처럼 들린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SK하이닉스의 HBM 개발이나 삼성전자의 실적 반등은 수십 년간의 혁신이 만든 정당한 결과라는 거죠. 따라서 이를 '혁신이익'으로 바로 잡고, R&D와 설비 투자, 협력사 상생 등 혁신 생태계 유지를 위한 재투자에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칩스법의 '업사이드 쉐어링' 조항처럼 외국 정부가 이익 공유를 요구할 명분을 줄 수 있다는 경제 안보적 우려도 제기됩니다.
기금이냐 국부펀드냐, 부처 간 주도권 다툼도 격화되고 있습니다
초과세수를 담을 그릇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를 두고 부처 간 시선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기획예산처는 운용 폭이 넓은 독립 기금 방식을 선호하는 반면,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한국형 국부펀드 투입을 공개적으로 밝혔습니다. 결국 예산 주도권을 누가 쥘 것인가를 둘러싼 갈등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겁니다.
기획예산처가 기금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는 국부펀드가 금융시장 영역이라는 한계가 명확한 데 비해, 기금은 필요 시 국부펀드에 출자하는 방식도 가능해 운용이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초과세수가 매년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일반회계 전입금에 의존하는 기금 사업을 늘리는 것은 재정 칸막이만 늘리는 것이라고 비판합니다. 나라살림연구소 측은 차라리 국채 순발행을 줄여 재정 여력을 남기거나 에너지 인프라 같은 생산적 자본 지출에 직접 쓰는 게 낫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국가재정법이라는 벽도 있습니다. 현재 세계잉여금 상당 부분은 지방교부세와 공적자금상환기금으로 우선 배정되어 있어, 실제로 정부가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비율은 20% 내외에 불과합니다. 초과세수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법 개정 없이는 한계가 명확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센서 반도체를 제2의 메모리로, 지방에 미래를 심습니다
정부가 이 돈을 어디에 쓸지 구체적인 윤곽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핵심은 피지컬 AI의 3대 핵심 부품과 센서 반도체입니다. 이미 승자가 결정된 GPU와 메모리 시장 대신, 전력반도체와 액추에이터, 센서 등에서 제2의 메모리를 육성하겠다는 계획인데요. 단순 R&D 지원을 넘어 한국형 국부펀드나 전용 기금을 통한 장기 투자 플랫폼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지방에 반도체 생태계를 심는 작업도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전남 광주에 새 공장 건설을 추진 중인데, 이는 수도권 집중으로 인한 전력 공급 문제와 테러, 자연재해 등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입니다. 혁신이익이 발생한 현시점이 지방 거점 구축의 적기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죠.
다만 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방안을 확정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반기 경제성장전략과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될 예정이며, 지방교육재정교부금과 기초연금 등 경직된 지출 구조를 개선해 재정 운용 탄력성을 높이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막대한 자금이 미래를 위한 씨앗이 될지, 아니면 부처 간 잡음 속에 산으로 갈지, 향후 정부의 결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