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179명의 안전이 걸린 외교전
중동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호르무즈 해협에 한국 선박 26척과 선원 179명이 고립된 상태입니다. 이란과 미국·이스라엘 간의 군사적 충돌이 이어지면서 해상 교통로가 위협받고 있는 상황인데요. 한국 정부는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본격적인 외교전에 돌입했습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3일과 24일 이란을 비롯한 주요 걸프 국가들의 외교장관들과 잇따라 전화 통화를 진행하며, 우리 국민과 선박의 안전한 통과를 위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이란의 아바스 아라그치 외교장관은 통화에서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이들을 지지하는 세력의 선박에 대해서는 호르무즈 해협이 닫혀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그 외 국가들은 이란 측과 사전 조율을 거친다면 통과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전했습니다. 이는 한국 선박의 안전한 통행을 위한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으로 해석됩니다.
에너지 공급망과 국민 보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노력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글로벌 경제의 핵심 동맥입니다. 한국은 원유의 상당 부분을 중동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이 해협의 안정은 우리 경제에 직결된 문제입니다. 조현 장관은 이란과의 통화에서 걸프 지역 민간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과 에너지 공급 정상화를 위한 긴장 완화를 촉구했습니다. 동시에 오만의 외교장관에게는 액화천연가스(LNG)와 원유 수급에 대한 지원을, 쿠웨이트 외교장관에게는 주요 원유 공급국으로서 정유 시설의 신속한 복구를 기대한다는 점을 전했습니다.
국민 보호 측면에서도 다각도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외교부는 재외국민보호대책본부 회의를 열어 중동 지역 국민의 안전 대책을 논의했고, 주이라크대사관은 현지 주재원들을 인근국으로 대피시키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정부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규탄하는 22개국 공동 성명에 동참하는 한편, 이란과의 직접 소통 채널을 통해 실질적 협상을 이어가는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습니다. 서방 동맹국과의 연대를 과시하면서도, 현장에 갇힌 선원들의 안전이라는 실질적 이익을 챙기기 위한 전략입니다.
국회의 개입과 향후 외교적 전망
이러한 외교적 노력의 연장선에서, 주한 이란대사인 사이드 쿠제치 대사가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를 방문합니다. 이번 면담은 이란 대사관 측의 요청으로 성사된 것으로, 한국 측은 호르무즈 해협 내 상선 안전 보장과 교민 안전 문제를 직접 논의할 계획입니다. 국회가 외교 현안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로, 상황의 중대성을 반영합니다.
앞으로의 전망은 여전히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이란은 인도 유조선에 대한 특별 통과 예외를 인정하는 등 일부 유화적인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 갈등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쉽게 해소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한국 정부의 당면 과제는 이란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조율 하 통과'라는 원칙을 구체적 안전 보장 조치로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동시에 오만, 쿠웨이트 등 다른 걸프 협력 회의(GCC) 국가들과의 협력으로 에너지 공급망의 이중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중동의 불안정한 화약고 위에서, 외교적 섬세함과 실용주의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