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지구 재개발과 종묘 보존, 충돌하는 두 가치 사이의 주민들

문M매K
7개의 관련 기사

일 년 전 수정 · 2025년 12월 12일 오후 2:07

발행: 2025년 12월 12일 오전 11:50

요약 생성중...

종묘 일대의 세계유산지구 지정으로 세운4구역 재개발에 제동이 걸렸다.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영향평가 강화를, 서울시와 주민들은 장기간 지연된 개발로 인한 생계 위기를 호소하며 대립하고 있다. 이 논쟁은 보존과 개발이라는 두 가치의 충돌을 넘어, 과거 재개발 과정에서 무너진 지역 공동체와 주민들의 고통을 드러내며 지속 가능한 도시 계획의 필요성을 촉구하고 있다.

논쟁의 중심에 선 주민들

종묘 맞은편 세운지구 4구역 재개발 문제가 다시 불거졌습니다. 이번 논쟁의 불씨는 국가유산청이 종묘 일대 약 19만 제곱미터를 공식적으로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하면서부터입니다. 세계유산지구 지정은 종묘의 탁월한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조치지만, 동시에 이 일대 개발 사업에 ‘세계유산영향평가(HIA)’라는 새로운 규제 장치를 도입하게 됩니다. 이 평가는 종묘의 경관과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사업에 적용될 수 있어, 세운4구역의 초고층 건물 건설 계획에 직접적인 제동이 걸릴 수 있는 상황입니다.

문제는 이 논쟁 속에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들은 십수 년째 불확실한 미래에 시달려온 지역 주민과 상인들이라는 점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현장을 찾아 진행한 간담회에서는 월세 수입이 끊긴 채 이주대책비 대출 이자만 감당하기 버거운 주민들의 절박한 호소가 이어졌습니다. 시장은 종묘 외대문에서 180m 떨어진 4구역이 완충구역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과도한 영향평가 요구가 사업 자체를 좌초시킬 수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길어진 싸움, 무너진 공동체

세운지구의 갈등은 하루아침에 생긴 문제가 아닙니다. 1960~70년대 형성된 세운상가는 당시 서민 경제의 한축을 담당했지만,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재개발 논의는 오랜 시간 지역 공동체를 흔들어왔습니다. 이미 대부분의 구역이 재개발되어 고층 아파트와 상업시설로 변모했지만, 과거의 활력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상인들은 생계를 잃었고, 지역의 정체성은 사라졌습니다. 결국 재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된 도시 계획은 기능 회복과 주거 환경 개선이라는 명분과는 달리, 기존 공동체를 해체시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제 남은 마지막 퍼즐인 4구역은 높이 제한 문제로 또다시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기존 100m 제한으로는 사업성이 너무 낮아 사업 자체가 진행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여기에 세계유산지구 지정으로 인한 새로운 규제 가능성이 더해지며 불확실성은 극대화됐습니다. 서울시는 높이 제한 완화를 검토했지만, 도시 경관 훼손 우려로 결정을 미뤄왔습니다.

맞서는 두 원칙, 보존과 개발

국가유산청의 입장은 분명합니다. 내년 상반기 시행될 ‘세계유산 특별법’ 시행령 개정안에는 종묘 주변 관리 범위를 현행 100m에서 최대 500m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길 예정입니다. 이는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국제적 원칙과 책임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는 입장입니다.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제도를 보완해 종묘의 가치를 미래 세대에 온전히 전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반면, 서울시와 개발을 기다리는 주민들은 ‘현실’을 강조합니다. 장기간 방치된 땅과 그 위에서 삶을 영위해야 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우선이라는 거죠. 오 시장은 “과도한 영향평가는 사업 포기나 다름없다”며 주민의 고통에 공감했습니다. 두 기관의 입장은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도시 개발을 통한 주민 삶의 개선이라는 현실적 필요성 사이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해법은 소통과 균형에

이 복잡한 문제의 해법은 결국 균형에 있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180m까지 높이를 완화하되, 100m 이하의 건물은 유지하는 등의 절충안이 제시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술적인 해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정의 공정성입니다. 과거 재개발 과정에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소통과 합의 과정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세운지구 문제는 단순히 한 구역의 개발 여부를 넘어, 서울의 도시 계획이 어떻게 수립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획일적이고 상업 중심의 개발을 넘어, 지역의 역사와 공동체를 보존하면서도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모델을 찾는 일이 필요합니다. 세계유산을 보존하는 일과 시민의 오늘을 보장하는 일이 충돌하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정책과 대화가 지금이라도 시작되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