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보다 강했던 한 발의 메시지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감옥에 남긴 유묵이 1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일본에서 환수한 '만국공법불여대포'를 8월 13일 서울 덕수궁 중명전에서 공개할 예정인데요. 허민 국가유산청장이 5일 청와대 업무보고에서 이 소식을 직접 밝혔고,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는 장지훈 경기대 교수와 박철상 한국문헌문화연구소장 등 전문가들이 유묵의 가치를 설명할 예정입니다.
이 유묵에는 국제법이 대포만도 못하다는 의미의 글귀가 담겨 있습니다. 당시 제국주의 열강의 무력 논리 앞에서 국제질서가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일갈한 표현입니다. 1909년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뒤 뤼순 감옥에 갇혔던 안 의사는 1910년 3월 26일 순국을 앞두고 이 글을 남겼습니다. 유묵 아래에는 '대한국인 안중근'이라는 서명과 함께 손바닥에 먹을 묻혀 찍은 도장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그의 결연한 의지를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옥중 40일, 그가 남긴 31점의 흔적
안중근 의사는 사형 선고 후 약 40일간 옥중에서 글씨를 이어갔습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된 유묵은 총 31점으로, 고전 인용과 철학적 문구가 곳곳에 담겨 있는데요. 뜻을 품은 사람은 몸을 바쳐 의를 이룬다는 글귀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문장 등은 그의 학식과 신념을 엿보게 합니다.
물론 최근 민간의 노력과 경매를 통해 유묵이 꾸준히 귀환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백인당중유태화'가 27억원에 낙찰되는 등 작품의 역사적 가치가 재확인되기도 했는데요.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딸 구혜정 여사와 이상현 대표가 기증한 '녹죽' 역시 지난해 특별전을 통해 국민과 만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유산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1972년 보물로 지정된 '치악의악식자부족여의'는 현재 소재가 확인되지 않아 도난 국가유산으로 등록된 상태이며, 추가 발굴을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116년 만의 귀환, 남은 과제는
이번 유묵 공개는 광복 81주년을 앞둔 뜻깊은 시점에서 이루어집니다. 단순한 서예 작품을 넘어 독립운동가의 삶과 정신이 깃든 살아있는 역사자료로 평가받는 만큼, 많은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유산청은 공개 후에도 해외에 남아 있는 유산의 지속적인 환수와 보존에 힘쓸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사실 안중근 의사의 유묵이 지닌 가치는 감정평가로 다 하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조선의 절규이자 동시에 오늘날에도 유효한 국제질서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행방이 묘연한 유묵들이 추가로 발굴되고 복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조사와 국제 협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