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 직전 뒤집힌 대러 제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고율 관세와 제재를 면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10월 16일 백악관을 통해 공개된 행정명령으로, 지난 7월 서명한 린지 O. 그레이엄 러시아·이란 제재법의 핵심 조항 대부분이 적용되지 않게 된 겁니다. 시행을 이틀 앞두고 나온 결정이라 파장이 큽니다.
이 법은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상위 5개국에 최대 100% 관세를, 일부 러시아산 상품에는 500% 관세를 부과하도록 설계됐습니다. 러시아의 전쟁 자금줄을 끊겠다는 취지였죠. 트럼프는 현시점에서 면제 조치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근거는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유가 110달러와 중간선거
배경에는 미국 내 유류 가격 부담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제유가가 110달러에 육박하고 경유 가격이 치솟으면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유권자 불만이 커진 상황이었습니다. 에너지 가격 안정이 선거 판세를 좌우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한 겁니다.
트럼프는 앞서 10월 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협의해 러시아산 경유를 미국과 국제시장에 공급하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즉시 30만 톤을 공급하고, 11월에 50만 톤, 그 직후 100만 톤을 추가한다는 구상입니다. 제재가 그대로 시행되면 이 거래가 막히기 때문에, 면제는 공급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사전 조치 성격이 짙습니다.
정치권 반발과 남은 변수
미국 정치권에서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습니다. 민주당의 리처드 블루먼솔 상원의원은 비굴하고 비겁한 행동이라며 푸틴의 환심을 사려는 조치라고 비판했습니다. 돈 바이어 하원의원도 우크라이나 협력국을 배신하고 러시아의 불법 침략 전쟁에 책임을 묻는 입법 취지를 거스르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공화당 일부 의원들도 러시아산 경유 판매가 전쟁 자금 조달에 기여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반대로 러시아산 경유 공급이 실제로 유류 가격을 얼마나 낮출지는 미지수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역시 연료 공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가격 안정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트럼프가 최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공개 비판하며 러시아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점도 논란을 키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