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맞추기"에 매달린 국세청
국세청이 체납액 공개를 앞두고 누계 체납액을 100조원 미만으로 맞추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총 1조 4,268억 원의 국세채권을 위법하게 소멸시켰고, 고액 체납자에게는 특혜를 제공한 반면 소액 체납자의 재산은 장기간 방치하는 등 체납 관리의 심각한 불공정이 확인됐습니다.
부당 소멸로 이어진 ‘목표 압박’
2020년 국정감사에서 누계 체납액 공개 요구가 나오자 국세청은 전산 조사 결과 122조원에 달하는 체납액을 파악했습니다. 부실 관리 비난을 우려한 국세청은 이를 100조원 미만으로 줄이기로 결정하고, 지방청에 일률적으로 20% 감축 목표를 할당했습니다. 더 나아가 목표 달성을 직원 성과평가에 반영하며 압박을 가했죠.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국세채권 소멸시효 기산점을 법과 다르게 적용했습니다. 압류해제일이 아닌 추심일이나 압류일 등 이전 시점으로 소급 적용해 시효 만료된 채권을 대량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2021년 한 해에만 1조 1,891억 원이 소멸됐고, 3년간 총 1조 4,268억 원의 국세가 증발했습니다. 특히 규제 대상이었던 고액·상습 체납자 289명의 체납액 2,685억 원도 포함됐습니다.
고액 체납자 특혜 vs 소액 체납자 방치
서울지방국세청은 209억 원을 체납한 A씨 일가에 대해 출국 금지를 세 차례 해제하고, 압류했던 에르메스 가방 30점과 로마네콩티 와인 1,005병을 부실한 증빙에도 불구하고 풀어주는 특혜를 제공했습니다. A씨는 국외 도피 우려가 있다는 경고를 무시하고 출국을 반복했지만, 담당자는 ‘도피 우려 없다’는 이유로 출국 금지를 해제했습니다.
반면, 체납액 500만 원 미만 소액 체납자 56만 명에 대한 점검에서는 1만 7,545건의 부동산 압류가 공매 절차 없이 5년 이상 방치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절반 이상은 약식 감정조차 이루어지지 않았고, 최장 37년간 압류 상태로 남아있었습니다. 이처럼 체납액 규모에 따라 처벌의 강도가 극명하게 갈리는 불공정이 드러났습니다.
감사원의 강력 대응과 남은 과제
감사원은 국세청의 조직적 통계 조작과 체납징수권 포기 행위를 지적하며, 관련자에 대한 중징계와 전직 국세청장 등의 비위 기록을 인사혁신처에 통보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또한 국세징수권 소멸시효 기산점 임의 적용 금지, 체납액 축소를 위한 무리한 목표 설정 중단 등을 통보했습니다.
국세 징수의 공정성과 투명성은 국민의 세금 신뢰를 좌우합니다. 성과주의에 매몰된 ‘숫자 맞추기’가 얼마나 큰 부작용을 낳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입니다. 앞으로 국세청이 체납 관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해 재발을 막을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