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에 모인 80만 명, 그리고 뒤섞인 폭력
지난 20일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는 학생과 노동자, 농민, 교사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이 모였습니다. 프랑스 내무부 추산 55만 명, 주최 측 추산 80만 명이 참여한 대규모 시위였는데요. 이들이 내건 건 휘발유 가격과 물가, 교육이었습니다. 18세 학생 아돕은 "프랑스는 굴복이 아니라 저항의 나라"라며 휘발유 5유로, 더 나은 삶을 요구했습니다.
문제는 이 흐름이 평화롭게만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블랙 블록'과 '카쇠르' 같은 과격 집단이 약탈과 방화를 벌이면서 본래의 요구는 가려지고 말았죠. 경찰은 최루탄을 쏘았고, 17세 소년 나엘이 경찰 총격으로 숨진 사건은 전국적인 폭동으로 번졌습니다.
약탈품이 중고 거래로
시위 뒤에는 뜻밖의 풍경이 이어졌습니다. 약탈당한 고가 제품들이 중고 거래 시장에 대거 올라온 겁니다. 폭력 사태 때마다 반복되는 장면인데요. 약탈이 이념이나 분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프랑스 법무부는 폭력 가담자의 동기를 분노와 반항, 놀이와 경쟁, 경제적 이득, 개인·지역 갈등 네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가담자가 이민자에 국한되지 않고 사회에 완전히 통합된 프랑스인까지 포함된다는 점도 확인됐죠. 특히 노동시장에서 배제된 지역일수록 폭동이 잦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결국 폭력의 뿌리에는 경제가 자리하고 있는 셈입니다.
일해도 남는 게 없다는 사람들
같은 맥락에서 주목받는 현상이 '그냥 쉼'입니다. "100만 원을 벌어도 74만 원이 사라진다"는 말이 유럽에서 퍼지고 있는데요. 세금과 주거비, 교통비를 빼고 나면 일해서 얻는 이득이 크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않는 사람이 늘고, 그 배제가 다시 거리로 나오는 악순환이 만들어집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도 폭력 시위가 벌어져 병력 500명이 투입됐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두 사례는 우연이 아닙니다. 물가와 고용, 주거라는 생활 조건이 흔들릴 때 광장이 먼저 반응한다는 걸 보여주죠. 다음 쟁점은 진압이 아니라, 그 아래 깔린 경제 문제를 누가 어떻게 다룰 것이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