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대' 한마디가 남긴 것
경기도지사의 한 발언이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지난 1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소방 예산을 두고 "가장 큰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말했는데요. 소방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하는 이들에게는 쉽게 넘길 수 없는 표현이었습니다.
사흘 뒤인 16일, 경기 부천의 한 금속 사출 인쇄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진압 과정에서 김진석 소방위가 순직하고 동료 5명이 다쳤죠. '빨대'라는 단어와 순직 소식이 겹치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추 지사는 17일 빈소를 찾아 사과했고, 19일과 20일에도 거듭 고개를 숙였지만 여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빨대 대신 국화 한 송이
논란 한가운데 현직 소방관의 영상 하나가 화제가 됐습니다. 충북 진천소방서의 나경진 소방교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1분 남짓한 영상인데요. 물이 담긴 유리컵에 꽂힌 노란 빨대를 빼고, 그 자리에 흰 국화를 꽂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대사는 없습니다. 마지막 검은 화면에 "고 김진석 소방위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소방가가 흐르죠. 말보다 강한 침묵의 메시지였던 셈입니다. 영상은 22일 기준 조회수 66만 회를 넘겼고, 댓글에는 "국민으로서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드러난 '반쪽 국가직'의 현실
이번 사안이 단순한 실언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소방 재정 구조에 있습니다. 소방공무원은 2020년 국가직으로 전환됐지만, 실제 예산 부담은 여전히 지방에 크게 남아 있는데요. 전체 소방 예산 약 9조 원 가운데 국가 지원은 10% 남짓이고, 인건비 국비 비율은 8.6%에 그칩니다.
신분과 정원은 국가가 정하는데 비용은 지방이 떠안는 구조인 겁니다. 소방안전교부세 역시 담배 소비세에 묶여 있어, 흡연 인구가 줄수록 재원도 함께 줄어드는 취약점을 안고 있습니다.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소방 재정 보완 필요성에 공감하며 국회 심의 과정에서 증액 가능성을 언급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추 지사와 부승찬 의원에게 경고 조치를 내리며 수습에 나섰고, 소방 관련 법안 111건 가운데 81건은 아직 상임위에 계류 중입니다. 순직한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말이 아닌 제도로 답해야 할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