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속 첫 틈, 프랑스·일본 선박 통과
이란 전쟁 발발 이후 사실상 봉쇄 상태였던 호르무즈 해협에 첫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최근 프랑스 선주 소유의 컨테이너선 ‘CMA CGM 크리비’호와 일본 해운사 상선미쓰이의 LNG 선박이 잇따라 해협을 통과했는데요. 이는 전쟁 이후 서유럽 및 일본 관련 선박으로는 각각 처음 있는 일입니다. 프랑스 선박은 이란이 개설한 ‘안전 통로’를 이용해 오만으로 향했고, 일본 선박의 통과도 확인되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와 선사들은 통과의 구체적 경위나 협상 과정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며 외교적 민감성을 드러냈습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국 선박의 상황은 답보 상태입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에 묶여있는 한국 선박은 26척, 선원은 약 180명에 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해상 수송로 확보 협력을 약속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을 이어가고 있지만, 실질적인 돌파구는 아직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걸프 해역에 정박 중이던 선박 45척 중 2척이 빠져나가 43척으로 줄었지만, 한국 측은 아직 단 한 척의 통과 소식도 없는 상황이죠.
이란의 선택적 통제, ‘우호국’만 통과 허용
왜 프랑스와 일본 선박만 통과할 수 있었을까요? 그 배경에는 이란의 선택적 통제 정책이 있습니다. 이란은 전쟁 발발 이후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며, 중국, 러시아, 인도, 파키스탄, 튀르키예 등 자국과 우호 관계인 국가들의 선박에 대해서만 통과를 허용해왔습니다. 반대로 미국, 이스라엘 및 이들과 공조하는 국가들의 선박 통행은 금지해왔죠. 일본 정부는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이 이란 측에 일본 선박 안전을 요청했고, 이란이 협의에 응한 바 있다고 설명합니다. 즉, 최근 통과는 단순한 우연이 아닌, 외교적 교감의 결과물로 읽혀집니다.
한편 이란은 해협 통행에 대한 새로운 규칙도 만들고 있습니다. 이란 고위 관계자는 국영방송을 통해 “호르무즈 해협을 수년간 통제할 능력이 있다”고 장기전을 예고했고, 오만과 함께 선박 통행 감시를 위한 새로운 프로토콜을 작성 중이라고 밝혔습니다. 더욱이 배럴당 1달러의 통행료 부과 방안도 추진 중인데, 초대형 유조선 한 척이 통과할 경우 약 30억 원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어 국제 해운계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경제적 파장과 불확실한 전망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석유 수송의 약 3분의 1이 통과하는 경제적 요충지입니다. 이란이 통행료를 실제로 부과할 경우, 그 영향은 상당할 겁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7억 배럴의 중동산 원유를 수입했는데, 여기에 통행료가 적용되면 국내 정유업계에 연간 1조 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는 휘발유·경유 등 석유제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지고, 결국 전반적인 물가 상승 압력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죠.
현재의 부분적 통과가 완전한 봉쇄 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란은 여전히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유엔 안보리의 해협 개방 결의 준비에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와 일본 선박의 통과가 다른 서방 국가 선박의 통행으로 이어질지, 아니면 여전히 선택적 통제가 유지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여전히 해협에 갇힌 26척의 한국 선박과 180명 선원의 안전한 귀환이지요. 국제 사회의 외교적 노력과 함께, 에너지 수급 경로의 다변화 필요성도 다시 한번 제기되는 상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