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의 첫 방문, 러·일 갈등의 불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본과 영유권을 다투는 쿠릴열도를 22년 만에 처음으로 찾았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투루프섬에서 태평양 함대를 시찰하고 수산물 가공 공장을 방문하며 러시아의 실효 지배를 과시했는데요. 이번 방문은 영토 문제에 타협이 없다는 러시아의 의지를 대내외에 보여주는 상징적 행보로 풀이됩니다.
일본은 즉각 반발했습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북방영토가 역사적·국제법적으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이번 방문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도 같은 입장을 내놓았고, 주일 러시아 대사를 초치하는 등 외교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영토와 제재가 엮인 복잡한 셈법
쿠릴열도 갈등은 단순한 영유권 문제만은 아닙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일본이 서방과 함께 대러 제재를 이어오면서 양국 관계는 이미 얼어붙은 상태였는데요. 푸틴 대통령은 방문에 앞서 일본이 사태의 근본 원인도 파악하지 못한 채 일방적인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는 대러 제재를 지속하는 일본을 향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 읽힙니다.
러시아는 내부 결속도 노리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승전 결과물인 쿠릴열도를 내세워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하고, 다가오는 선거를 앞두고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일본이 주장하는 쿠나시르, 이투루프, 하보마이, 시코탄 등 4개 섬은 1945년 소련이 점령한 뒤 일본인 주민이 추방되고 러시아 병력이 주둔해 왔습니다.
반면 일본은 곤혹스러운 상황입니다. 영토 주장을 굽힐 수는 없지만, 러시아와의 관계 단절은 에너지 수급과 동북아 안보 환경에 부담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북아 긴장의 새로운 변수
갈등은 외교 영역을 넘어 군사적 영역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쿠릴열도 주변에서 반복적인 군사 훈련을 통보하고 신형 무기를 배치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중국과도 합동 해군 훈련을 진행하는 등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밀착이 눈에 띕니다.
미국은 일본의 주권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유엔은 양측의 자제를 촉구했습니다. 쿠릴열도를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영유권 분쟁을 넘어 동북아 안보 지형을 흔드는 새로운 변수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실 양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조약을 아직 체결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사태로 보아 당분간 조약 체결은 더욱 요원해질 전망이며, 러시아와 일본 사이의 냉랭한 관계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