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기억하는 두 가지 방식
중국 전역에서 사이렌이 울린 지난 13일은 난징 대학살 88주년이었습니다. 거리에서는 행인과 버스가 멈춰 서서 묵념의 시간을 가졌고, 일본 총리의 타이완 관련 발언과 맞물려 과거 침략의 상처를 고발하는 포스터도 곳곳에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추모 행사에서 중국이 보여준 모습은 상당히 이질적이었습니다. 한편에서는 일본을 겨냥한 강경한 군사적 메시지가 등장한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대규모 무력시위 대신 내부 결속을 위한 경제 청사진이 제시됐기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난징 대학살과 관련된 731부대원 심문 기록을 공개하며 중국의 추념 분위기에 동참한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중앙기록관은 이 기록이 역사적 진상을 밝히는 결정적 증거라고 강조했는데요. 이러한 국제적 공조는 단순한 역사 논쟁을 넘어 지금의 지정학적 갈등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미국과의 '관세 휴전' 이후 일본이 다시 중국의 주요 투쟁 대상으로 부상하면서, 과거사는 현재의 대립 구도를 설명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죠.
군사적 메시지와 도발적 행보
가장 강력한 시각적 메시지는 중국군 동부전구 공식 소셜미디어에서 나왔습니다. 일본군 모자를 쓴 해골이 큰 칼로 참수되는 포스터가 게시되었고, ‘88년이 지났지만 영령들의 피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는 문구와 함께 ‘군국주의의 유령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습니다. ‘대도제’라는 시에서는 일본을 낮추어 부르는 ‘동왜’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그 태도가 매우 경직되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더 직접적인 도발은 공중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중국의 H-6K 핵 폭격기가 도쿄를 겨냥한 위협 비행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가 오키나와 근해를 지나 시코쿠 남쪽까지 비행했고, 이 경로를 연장하면 도쿄와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로 이어진다는 분석입니다. 일본 방위성 관계자는 이를 도쿄 폭격 가능성을 과시하려는 의도로 풀이했습니다. 이러한 군사적 행보는 역사적 갈등이 단순한 추모를 넘어 현실 정치와 안보 문제로 직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내부 결속을 위한 경제 담론
흥미롭게도 같은 날 열린 국가 추도식에는 시진핑 국가주석을 비롯한 최고 지도부가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지나치게 반일 감정을 부추길 경우 국제적 이미지에 타격이 갈 것을 우려한 선택으로 해석합니다. 대신 정부가 강조한 것은 미래지향적인 경제 계획이었습니다. 시진핑 주석이 주재한 중앙경제공작회의 결정을 관철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공급망 분리 압박에 대응하기 위한 ‘내수 소비 주도 성장론’이 적극적으로 내세워졌죠.
이는 대외적으로는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부적으로는 국민의 관심과 에너지를 경제 발전과 내수 시장 활성화로 돌리려는 전략으로 읽힙니다. 중국 과기부 관계자는 시진핑 주석의 연설 정신을 학습하고 과학 기술 강국 건설에 매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되새기되, 그 에너지를 미래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겠다는 이중적 접근법이 엿보이는 순간입니다.
역사와 현실 정치의 교차로
난징 대학살 88주년을 맞아 중국이 보여준 이중적 모습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한편으로는 군국주의의 재등장을 경계하며 국민의 애국심을 고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제 환경 속에서 내부 단결과 경제적 자립을 촉구하는 것이죠. 일본에 대한 강경한 수사와 군사적 위협은 국내 강경파와 민족주의 세력을 의식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결국 이번 기념일은 중국이 어떻게 역사를 현재의 정치·경제적 목표에 활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고 있습니다. 추모는 단순한 과거 회상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내부 동원의 도구로 기능하고 있는 거죠. 동아시아의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역사 인식의 차이는 단순한 학술 논쟁을 넘어 안보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난징 대학살과 같은 역사적 사건은 중·일 관계뿐만 아니라 지역 전체의 안정을 가늠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