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조 선납 제안, 두 달 만에 무산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5년 치 전기요금 25조 원을 미리 내달라고 제안했지만, 두 회사 모두 참여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지난 7월 한전이 내놓은 방안인데요. 삼성전자에 20조 원, SK하이닉스에 5조 원을 1년 안에 선납하면 국고채보다 높은 이자를 얹어 돌려주고, 그 돈을 전력망에 우선 투자하겠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삼성전자는 부사장급 인사를 통해 구두로 거절 의사를 전했고, SK하이닉스도 비슷한 시기에 참여가 어렵다는 답을 보냈습니다. 한전은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실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두 회사로부터 수용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공식 확인했습니다.
하루 이자 115억 원, 절박했던 한전
한전이 무리한 제안을 꺼낸 배경에는 재무 위기가 자리합니다. 지난해 상반기 기준 총부채가 210조 원을 넘었고, 부채 비율은 400%대에 달합니다. 하루에만 115억 원의 이자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 반도체 메가 프로젝트용 전력망까지 지어야 하니, 추가 부채를 떠안을 여력이 없었던 겁니다.
기업들이 고개를 젓는 이유도 분명합니다. 반도체는 수요 변동이 큰 사이클 산업이라 지금 5년치 요금을 묶어두는 게 부담스럽고, 제시된 이자율이 3% 수준으로 미국 국채 금리보다 낮아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겁니다. 결국 양쪽 모두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었던 셈입니다.
정치권으로 번진 논쟁
이번 건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습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전력 독점 지위를 앞세운 법적 근거 없는 준조세이자 직권남용이라며, 거절한 기업에 보복성 조치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유승민 전 의원도 페이스북에서 당연한 결정이라며 관치경제의 망령을 버려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전기사업법과 한전법 개정안으로 선납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가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 공급을 약속한 만큼 재원 마련이 필요하다는 논리인데요. 선납 제안이 무산되면서 한전은 부채 경감과 전력망 확충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안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