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 불명 판정에 흔들린 경찰의 초기 수사
제주에서 실종된 지 104일 만에 숨진 채 발견된 30대 여성 장 모 씨의 사인이 결국 불명으로 판정되면서 경찰의 초기 대응이 큰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시신 발견 직후 경찰 수뇌부는 타살 가능성이 낮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뒀는데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에서도 목 부근 뼈에 골절이 확인됐다는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홍석기 국가수사본부장은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반대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시신이 크게 부패해 정확한 사인을 특정할 수 없으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런 번복에 유족과 지역 주민들의 불신은 커졌고, 경찰이 부실 수사 논란을 피하려 성급하게 결론부터 끌어댄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경찰은 추정성 보도를 막기 위한 설명이었다고 해명했지만, 이미 물은 건너간 상황입니다.
235건의 실종 사건을 지워버린 경찰관
이번 사건의 발단은 제주서부경찰서 부 경장의 행태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지난 5월 장 씨의 실종 신고를 접수한 뒤, 연락이 닿은 것처럼 꾸며 약 두 시간 반 만에 사건을 허위 종결했습니다. 이로 인해 실종자 수색은 뒤늦게 시작됐고, 장 씨의 시신은 긴 시간 방치된 끝에 지문조차 확인할 수 없을 만큼 훼손된 상태로 발견됐습니다.
수사가 확대되면서 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부 경장이 지난해 3월부터 올해 7월까지 처리한 실종 사건 해제 건수가 235건으로, 같은 팀 동료들보다 두 배 이상 많았던 겁니다. 그가 맡은 298건 중 63건은 시스템에서 삭제되거나 아예 입력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이에 경찰은 부 경장을 검찰에 송치하고, 지휘 감독 소홀 책임을 물어 서장과 형사과장 등 지휘 라인 4명을 대기 발령했습니다.
치안 불안과 지역 혐오, 그리고 경찰의 약속
사건이 알려지면서 제주 지역에는 치안 불안감이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특히 혼자 여행하는 20대 등 내국인 관광객들이 예약을 취소하고 다른 지역으로 발길을 돌리는 사례가 잇따랐는데요.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근거 없는 혐오 글이 확산되며 이른바 제주 때리기 현상까지 나타났습니다.
물론 제주도와 관광업계는 내국인 감소가 항공 좌석 축소나 유류할증료 부담 등 기존 추세의 영향이라며 사건과의 직접적 인과관계에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관광업계는 이미지가 곧 생명인 만큼, 연일 이어지는 부정적 뉴스가 관광객 심리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경찰은 이번 일을 계기로 최근 3년간 종결된 실종 사건 31만여 건을 전수 점검하고 있습니다. 비대면 종결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관리자 이중 확인 체계를 도입하는 등 재발 방지를 약속했는데요. 야간 전담 인력 확충과 성인 실종자 강제수색 법적 근거 마련도 검토 중입니다. 다만 이런 대책들이 도민과 관광객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