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도비 옆에 세워진 '진실' 안내판
제주 한울공원 인근 도로변에 세워진 한 추도비 옆에 새로운 안내판이 등장했습니다. ‘바로 세운 진실’이라는 제목의 이 안내판은 1948년 제주 4·3 사건 당시 강경 진압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고(故) 박진경 대령의 행적을 담고 있는데요. 안내판 설치 하루 전인 12월 14일, 이재명 대통령은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지정 취소를 검토하라고 공식 지시했습니다. 한 인물을 둘러싼 상반된 평가와 정부의 번복 결정이 다시 한번 민감한 역사적 상처를 건드리고 있습니다.
박진경 대령은 1948년 5월, 조선경비대 제9연대장으로 제주에 부임했습니다. 당시 제주도는 4·3 무장봉기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난 상황이었죠. 그는 부임 약 40일 만인 같은 해 6월 18일, 부하 장교들에게 암살당했습니다. 문제는 그가 남긴 기록입니다. 안내판과 정부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30만 도민이 희생돼도 무방하다’는 발언을 했고, 소년과 노인, 부녀자 등 3천여 명을 체포하는 강경 진압 작전을 지휘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훈장과 유공자 자격을 둘러싼 법적 쟁점
논란의 불씨는 박 대령의 ‘을지무공훈장’에서 시작됐습니다. 그는 1950년, 한국전쟁 중 사후에 이 훈장을 받았고, 이 수훈 기록을 근거로 최근 유족이 국가유공자 신청을 했습니다. 서울보훈지청은 이를 승인했지만, 이 결정은 제주 4·3 희생자 유족과 도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죠. 국가보훈부 장관이 제주를 찾아 사과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법적 문제가 불거집니다. 국방부는 박 대령의 무공훈장 서훈 취소를 검토 중이지만, ‘전공 확인서’ 같은 구체적 공적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 기술적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당시 전쟁 중이어서 공식 문서가 부재한 경우가 많다는 게 국방부의 설명입니다. 더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박 대령의 주요 활동 시기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1948년 8월) 이전의 미군정 시기라는 점을 들어, 현행 상훈법상 무공훈장 수여 대상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표합니다. 그의 훈장과 국가유공자 자격이 처음부터 ‘원천무효’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상처받은 기억과 충돌하는 평가
이번 논란은 단순한 행정 절차 문제를 넘어 서로 충돌하는 역사 인식을 드러냅니다. 한편에서는 박진경 대령을 ‘건국을 방해하는 무장 세력과 싸운 군인’으로 평가합니다. 그를 다룬 영화 ‘건국전쟁2’가 이러한 시각을 반영했고, 일부 보훈단체는 그를 영웅으로 추앙해 왔습니다. 그의 추도비도 1952년 처음 세워진 후 여러 차례 이전되며 현재까지 남아있죠.
반면, 제주 4·3 평화재단과 유족회는 그를 ‘강경 진압의 주범’이자 ‘양민 학살의 책임자’로 규정합니다. 오영훈 제주지사는 안내판 설치 행사에서 “대한민국 국민을 학살한 주범에게 국가유공자 증서가 발급되는 상황”에 깊은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제주도의 입장은 명확합니다. 정부의 공식 진상보고서에 명시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 왜곡을 막고 진실을 알리겠다는 것이죠. 이번 안내판 설치 역시 영화 상영이나 왜곡 현수막 게시 등 최근 잇따른 역사 왜곡 시도에 대한 대응의 일환입니다.
해결을 향한 어려운 걸음
대통령의 지시와 국방부의 검토는 논란을 수습하려는 움직임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해결까지의 길은 멀고 험합니다. 국가보훈부는 훈장 수훈 사실 자체가 국가유공자 지정의 강력한 근거가 되기 때문에 행정부의 단독 결정으로 취소하기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훈장이 먼저 취소되어야 그에 따라 자격이 소급 취소될 수 있는 구조인데요, 상훈법에 따르면 훈장 취소는 ‘공적이 거짓으로 밝혀진 경우’에만 가능합니다. 공적 기록 자체가 없는 현재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가 핵심 쟁점으로 남습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지시를 ‘국민 주권 정부의 의지’라며 환영한 반면, 진보당은 이번 사태를 ‘국가적 혼란’으로 규정하고 4·3특별법 개정을 촉구했습니다. 이번 사건은 단일 인물의 평가 문제를 넘어, 우리 사회가 아직 70여 년 전의 비극을 어떻게 기억하고 화해해 나갈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권오을 보훈부 장관이 ‘이념과 진영을 초월한 객관적 판단’을 약속한 것처럼, 결국 필요한 것은 복잡한 역사의 그늘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고, 모든 피해자에 대한 존중 위에서 미래를 모색하는 태도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