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20분 전의 마지막 출동
지난 16일 오전 8시 38분, 경기 부천시 오정구 내동의 한 금속 부품 도장 공장에서 불이 났습니다.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퇴근을 20분 앞둔 김진석 소방위가 화재 경보를 듣고 곧바로 출동했는데요. 3층 세척실로 진입해 진압에 나섰다가 급격히 번진 불길과 연기에 동료와 함께 고립됐습니다.
발견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였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끝내 숨을 거뒀습니다. 향년 44세, 내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여섯 살 딸을 남긴 겁니다. 방독면이 열에 녹아 벗겨지면서 유독가스를 들이마신 것이 직접적인 원인으로 전해졌습니다.
이 불로 소방관 1명이 순직하고 1명이 중상을 입었으며, 소방관 4명과 공장 관계자 2명 등 모두 8명이 다쳤습니다. 불은 발생 2시간 28분 만에 잡혔습니다.
안전 설비는 없었다
합동 감식에 나선 경찰은 금속을 세척한 뒤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시너 유증기에 정전기나 마찰열로 스파크가 튀면서 불이 붙었을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습니다. 발화 지점에서 불과 1~2미터 떨어진 곳에는 시너 통과 페인트통 수백 개가 쌓여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같은 위험을 막을 설비가 사실상 없었다는 점입니다. 현장에는 방폭 장비는 물론 스프링클러 같은 기본 소방 시설도 갖춰지지 않았습니다. 건축 면적이 362제곱미터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기준에 미치지 못했고, 위험물 취급 허가도 받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경찰은 33명 규모의 전담팀을 꾸려 세척 용액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넘겨 정밀 분석하는 한편, 무허가 위험물 보관과 안전 규정 위반 여부를 함께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재정 빨대' 발언 논란
순직 소식이 전해지면서 추미애 경기도지사의 발언이 다시 도마에 올랐습니다. 추 지사는 지난 13일 국정감사에서 소방 재정을 두고 "골치 아픈 재정 빨대 같다"고 표현했는데요. 소방 노조는 현장 대원들의 헌신을 폄훼한 표현이라며 즉각 사과를 요구했습니다.
추 지사는 17일 빈소를 찾아 조문한 자리에서 "사과를 바라시니 마음 다해 사과한다"며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경기도 소방 인건비가 1조 1000억 원인데 정부 지원은 800억 원에 그친다는 재정 구조를 지적하려 한 것이지, 대원들을 깎아내리려는 뜻은 아니었다는 설명입니다.
소방청은 고인에게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옥조근정훈장을 추진하는 한편 국립현충원 안장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영결식은 19일 오전 부천실내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으로 치러집니다.
최근 7년간 화재 진압과 구조 등 위험 업무를 수행하다 순직한 소방관은 모두 28명입니다. 올해만 벌써 네 번째인데요. 이재명 대통령과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도 애도를 표하며 안전 관리 체계 개선을 약속했습니다. 반복되는 희생을 막기 위한 현장 안전 대책이 어디까지 실효를 거둘지가 남은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