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가 사라진 날, 고위직은 늘어만 갔습니다
6월 3일 지방선거 당시 전국 26곳의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동이 나는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특히 서울 잠실7동 제2투표소에서는 투표가 공식 중단되었고, 분노한 유권자들이 개표소가 있는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까지 이동해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참정권이 침해된 초유의 사태였는데요.
이러한 행정 부실의 배경에는 선관위의 기형적인 조직 구조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국가법령정보센터 공무원 정원표에 따르면, 선관위의 5급 이상 고위직 비율은 약 22%에 달했습니다. 국세청의 약 8%와 비교하면 현저히 높은 수준이죠. 이처럼 비대해진 고위직 중심 구조는 실무 인력 부족과 방만한 예산 집행을 낳았고, 결국 투표 현장의 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보고를 피한 예산 집행과 호화 출장
전현직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실태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은 2024년 11월 유럽 출장에 7,194만 원을, 덴마크와 스웨덴 출장에는 9,053만 원을 사용했습니다. 대외용 보고서에는 누락되었던 부인의 항공료와 숙박비가 비공개 문서에 포함되어 있었고, 총선을 앞둔 시기에 몰디브 등 관광지를 포함한 30여 차례의 해외 출장이 다녀온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업무추진비를 둘러싼 편법이 버젓이 통했습니다. 2023년 12월 강남의 한 고급 일식당에서 전직 상임위원과 사무총장 등은 63만 원 식사비를 두 개 카드로 나누어 결제했습니다. 과천에서도 사무차장과 기획국장이 67만 원, 조사국장과 기획국장이 55만 원을 각각 쪼개어 결제했는데, 이는 50만 원 이상 사용 시 보고해야 하는 규정을 피하려는 수법입니다. 심지어 총무과에서 50만 원을 넘기지 말라고 공지했다는 증언까지 나와 내부적으로 지침 위반이 권고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또한 감사관이 감사 대상자와 업무추진비로 만찬을 하는 등 부적절한 집행 사례가 잇따랐으나, 지난 10년간 선관위가 정식 회계 감사를 받은 것은 단 두 차례에 불과했습니다.
878건 채용 비리와 감사원의 칼날
선관위 내부의 인사 비리 규모도 상당했습니다. 2023년 감사원 감찰 결과에서 면접 점수 조작, 직원 자녀 비공개 특혜 선발 등 채용 관련 위법 및 부당 사례가 878건이나 적발되었습니다. 고위직과 연관된 인물들이 채용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정황이 구체적으로 제기되었습니다.
예산 집행 측면에서도 문제는 컸습니다. 2010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추진된 약 300억 원 규모의 외부 용역 사업은 그 목적과 세부 내역이 제대로 감시되지 않은 채 진행되었습니다. 투표용지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기관이 300억 원대 사업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었을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에 감사원은 선관위에 대한 회계 검사를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며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습니다. 선관위는 모든 절차가 적법했다며 관련 의혹들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이번에 드러난 여러 정황들은 공정과 중립을 지켜야 할 선거 관리기구의 신뢰를 크게 흔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