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보다 치명적인 바다
올해 흑해에서 공격받은 선박이 570척을 넘어섰습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와 해상 보안업체 앰브리, 국제해사기구 집계를 보면 최소 40명의 선원이 목숨을 잃었는데요. 같은 기간 호르무즈 해협 사망자가 24명이었던 것과 견주면 두 배에 가까운 규모입니다.
특히 7월부터 9월까지 3분기만 놓고 보면 387척이 공격을 받아 전 분기 대비 다섯 배 이상 늘었습니다. 하루 평균 네 건이 넘는 공격이 벌어진 셈인데요. 일부 분석가는 흑해의 피격 건수가 걸프 지역의 여섯 배를 웃돌 것으로 추정하기도 합니다.
곡물협정 무산에서 시작된 보복
배경을 들여다보면 흐름이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흑해는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기뢰와 항만 폭격으로 이미 위험 해역으로 분류돼 왔습니다. 여기에 2023년 유엔과 튀르키예가 중재한 곡물 수출 협정이 무산되면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죠.
우크라이나는 크림반도로 향하는 러시아의 경유 공급을 끊기 위해 드론을 동원했고, 이후 공격 범위를 케르치 해협까지 넓혔습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 항구를 오가는 선박을 집중적으로 겨냥하며 맞불을 놨는데요. 앰브리 집계로 최근 45일간 선박 공격의 약 90%가 러시아 쪽에서 이뤄졌습니다.
공격은 NATO 회원국인 루마니아 연안까지 번졌습니다. 지난 15일 루마니아 해역에 정박 중이던 화학제품 운반선 와인 트레이더가 드론 공격으로 불이 붙어 승조원 12명 가운데 7명이 실종됐죠.
떠나지 않는 배들
해운업계의 반응은 빠르고 단호합니다. 우크라이나 해운노조의 올레흐 흐리호리우크 위원장은 흑해 항구 기항이 사실상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며 생명 위협을 호소했습니다. 중동에서는 높은 운임을 노리고 위험을 감수하는 선사가 있지만, 흑해는 운송 수익성이 낮은 데다 공격 위험까지 커 배를 투입할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입니다.
로이즈리스트 인텔리전스의 브리짓 디아쿤 연구책임자는 수년간 전쟁이 해상 무역에 미치는 영향을 추적했지만 이런 상황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선원 안전과 물류망이 동시에 흔들리는 만큼, 해상 안보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논의도 더는 미룰 수 없는 국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