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쇄 위협과 통행료라는 새로운 무기
중동의 전략적 요충지인 호르무즈 해협이 새로운 갈등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 이란이 선박 통과에 대한 통행료를 최대 150%까지 인상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된 이 문제는, 단순한 경제적 요구를 넘어 지정학적 힘겨루기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톤당 30달러인 통행료가 최대 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에, 국제 해운계는 비상이 걸린 상태입니다. 이란은 이 조치를 통해 전쟁 비용을 보전하고 미국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죠. 더욱이 예멘의 후티 반군이 홍해의 바브엘만데브 해협 봉쇄를 경고하며 가세하면서, 중동의 두 주요 해상 물류 길목이 동시에 위협받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이란의 통행료 징수를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며 단호히 반대하고 있습니다.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은 해협의 자유로운 통행 보장을 강조했는데요. 그러나 이란의 입장은 확고합니다. 강경 보수 매체를 통해 미군의 중동 지역 완전 철수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확보를 종전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죠. 이란 혁명수비대는 이미 7척의 함정을 배치해 경계를 강화했고, 의회에서는 선박 한 척당 약 200만 달러(한화 약 30억 원)의 통행료를 부과하는 법안을 다음 주 중으로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주변국의 분주한 중재 외교
이런 첨예한 대립 속에서 파키스탄이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 29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튀르키예, 이집트 외무장관들이 모여 4자 회담을 가졌는데요. 회담의 최대 쟁점은 호르무즈 해협의 재개방이었습니다. 참가국들은 수에즈 운하와 유사한 통행료 체계를 담은 제안서를 미국 백악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파키스탄의 이샤크 다르 외교장관은 미국과 이란 양측 모두 파키스탄의 중재 노력을 신뢰하고 있으며, 수일 내로 양국 간 협상을 주최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중재 노력은 구체적인 제안으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튀르키예,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는 호르무즈 해협의 원유 수송을 관리할 국제 컨소시엄 구성을 논의 중이며 파키스탄의 참여를 요청했습니다. 한편, 이미 태국과 파키스탄, 인도네시아는 이란과의 개별 합의를 통해 자국 선박의 안전한 통과를 확보한 상태입니다. 태국의 아누틴 총리는 이란과의 합의로 연료 공급 차질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을 표명하기도 했죠. 이란 역시 국제해사기구 회원국들에게 ‘비적대적 선박’에 한해 사전 조율을 통해 통과를 허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유가 폭등의 그림자
이 복잡한 외교전의 배후에는 에너지 안보와 세계 경제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수송량의 약 20%가 통과하는 곳입니다. 후티 반군이 위협하는 홍해까지 봉쇄될 경우,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해 운송 기간이 최대 15일까지 늘어나고 물류비는 급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불안감이 반영되듯, 후티 반군의 참전 소식에 국제 유가는 3% 이상 급등했고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유가 변동을 넘어 실물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습니다. 2024년 홍해 봉쇄 당시 삼성전자의 물류비가 전년 대비 72% 급등했던 사례가 뼈아픈 교훈으로 남아있죠. 유럽으로의 수출입에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은 이중의 해상 봉쇄 위기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걸프 해역에는 이미 약 3,200척의 선박이 발이 묶인 상태로, 일부 선사들은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이란 측에 거액의 통행료를 지불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습니다. 호르무즈를 둘러싼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에너지 값과 물류비 상승이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