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바다에서 마감한 파란만장한 수행
2026년 8월 22일 오전, 제주 서귀포 하예포구 인근 해상에서 구조된 명진스님이 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끝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세수 76세, 법랍 52년의 생애를 마감한 것인데요. 해경은 스님이 착용한 잠수복과 오리발 등을 토대로 프리다이빙 연습 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1950년 충남 당진에서 태어난 명진스님은 1969년 해인사 백련암에서 출가했습니다. 이후 1994년에는 조계종 종단 개혁을 주도했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봉은사 주지를 역임하며 불교계에 큰 변화를 몰고 왔는데요. 특히 사찰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한 파격적인 시도는 당시 불교계의 폐쇄적인 관행을 정면으로 깨뜨린 조치였습니다. 재정 공개 이후 봉은사는 오히려 신도가 늘고 재산이 증식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맞이했고, 이는 화계사를 비롯한 여러 사찰과 조계종 종단 전체에 재정 투명화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봉은사 주지 시절, 명진스님은 도심 속 수행도량 복원을 위해 1천 일 동안 매일 세 차례 1천 배 기도를 올리는 정진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를 더 유명하게 만든 건 거침없는 사회 참여였습니다. 이명박 정권과 자승 총무원장을 강하게 비판했고, 2009년 용산참사와 2014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연대하며 사회적 약자를 위한 목소리를 냈습니다. 당시 안상수 전 의원이 '운동권 좌파'라고 비난하자, "밥을 못해도 좌파 부인이라 할 판"이라며 위트 있게 맞받아치기도 했죠.
종단과 맞선 시련, 그리고 마침내 회복된 승적
이런 파격적인 행보는 당연히 불교계 내부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명진스님은 국정원으로부터 불법적인 민간인 사찰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고, 2017년에는 조계종으로부터 승적 박탈 징계까지 받았습니다. 종단 지도부와의 갈등이 극에 달한 순간이었는데요.
하지만 명진스님은 법적 대응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징계 무효 소송에서 1심과 2심을 모두 승소했고, 2026년 초 조계종과 대법원 상고를 하지 않기로 합의하면서 마침내 승적을 회복했습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종단과의 갈등이 봉합되는 듯했으나, 하필 그해 여름 제주 바다에서 갑작스러운 이별이 찾아왔습니다.
말년에는 제주 남선사에 머물며 프리다이빙에 도전했는데, 이는 수행자로서 생사의 두려움을 직면하고 극복하려는 의지였다고 전해집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SNS를 통해 고인이 뜨거운 청년의 마음으로 더 나은 세상과 평화를 위해 헌신했다며 깊이 애도했습니다.
확신과 독선을 경고한 자유로운 영혼
명진스님은 살아생전 확신과 독선의 위험성을 끊임없이 경고했습니다. 울리히 벡 교수와의 일화를 인용하며, 무엇인가를 확신하고 그것만이 진리라고 믿는 아만이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강조했죠. 모름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 전제되지 않은 종교나 사상은 허구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늘 자연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일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권위주의를 탈피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수행하며 사회적 불의에 호통치던 그의 삶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그가 남긴 말과 실천은 이제 불교계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현재 조계종과 소속 교구본사인 법주사, 제주 남선사 등이 장례 절차를 논의하고 있으며, 많은 제자와 동료 수행자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