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명함 한 장에 속은 소상공인들
"공공기관에서 대량 주문을 하겠다"는 연락에 소방용품 대리구매까지 떠안은 소상공인들이 100억원 가까운 피해를 봤습니다. 대구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공공기관 직원을 사칭해 물품을 대량 주문할 것처럼 속인 뒤 소방용품 대리구매 대금을 가로챈 혐의로 총책 30대 A씨 등 16명을 검거하고, 이 가운데 11명을 구속했다고 밝혔는데요.
피해자는 전국 도·소매업체 운영자 192명, 피해액은 약 100억원입니다. 1인당 평균 5200만원이 넘는 규모인데요. 범행 기간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4월까지 8개월 남짓입니다.
'노쇼'로 끝나지 않는 이유
수법은 정교했습니다. 먼저 건축자재 등 물품을 대량 주문해 신뢰를 쌓고, 곧이어 "소방용품이 필요한데 단가 문제로 직접 구매하기 어렵다"며 특정 업체에서 소화방화포나 질식소화포를 대신 사달라고 요청합니다. 기존 납품 대금과 대리구매 대금을 한꺼번에 주겠다고 약속해 의심을 지웠고, 공공기관 명의의 명함과 계약서를 이메일로 보내 정상 발주처럼 꾸몄습니다.
조직 구성도 체계적이었습니다. 한국인 총책을 중심으로 관리책, 인력수급책, 전화유인책이 역할을 나눴고, 경찰은 지휘체계와 범행의 계속성을 확인해 12명에게 범죄단체조직·활동 혐의를 추가로 적용했습니다. 대포통장을 넘긴 4명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함께 검거됐습니다.
베트남 하노이와 하이퐁에 거점을 둔 만큼 검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지난해 9월 최초 신고를 접수한 뒤 IP 접속기록을 분석해 조직원을 특정했고, 전국 유사 사건 192건을 병합 수사했습니다. 해외 체류자는 인터폴 적색수배와 베트남 공안 공조로 붙잡았으며, 1명은 현지에서 송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끊이지 않는 전화 한 통의 위력
비슷한 유형의 범죄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최근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보이스피싱 조직에 가담해 2000만원을 챙긴 혐의로 기소된 60대 남성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사회적 해악이 큰 범죄라고 지적하면서도 자백과 반성, 동종 전과가 없는 점 등을 참작했습니다.
공통점은 '공식'처럼 보이는 겉포장입니다. 경찰은 공공기관 명의의 명함이나 계약서를 받더라도 반드시 해당 기관 공식 연락처로 실제 발주 여부를 확인하고, 대리구매나 선입금을 요구하면 거래를 중단한 뒤 신고해 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거래처가 갑자기 결제 방식을 바꾸자고 할 때일수록 한 번 더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