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모의 장소가 갈린 전직 대통령들
2026년 9월 11일, 9·11 테러 25주년을 맞아 미국의 전·현직 대통령들이 제각각 다른 장소에서 추모에 나섰습니다.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등 4명의 전직 대통령은 뉴욕 맨해튼 그라운드 제로에 모여 통합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는데요.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워싱턴DC 펜타곤에서 홀로 추모식을 가졌습니다. 같은 날 같은 사건을 기리면서도, 행보와 메시지가 극명하게 엇갈린 셈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펜타곤 연설에서 9·11 테러를 거대하고 끔찍한 악의 순간으로 규정했습니다. 그는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기 위해 현재 싸우고 있는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25년 전의 맹세가 오늘날 이란과의 전쟁으로 이어진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7개월째 이어지는 이란 전쟁으로 인한 물가 급등과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유권자 불만을 의식한 정치적 행보로 풀이됩니다.
그라운드 제로와 펜타곤, 다른 선택의 이유
전직 대통령들이 뉴욕으로 향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펜타곤만 찾았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그라운드 제로 추모식이 정치인 연설을 허용하지 않는 특성상, 주목받고 싶어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성향과 맞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는데요.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행사에서 발언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후 골프 대회 참관을 위해 아일랜드로 출국할 예정이라 펜타곤이 더 적합했을 수 있습니다.
반면 부시 전 대통령은 대담에서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이 국가 안보에 직결된다며, 최근의 고립주의적 태도가 9·11의 교훈을 망각한 것이라고 경계했습니다. 클린턴, 오바마, 바이든 전 대통령 역시 국제적 연대와 통합을 강조하며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일변도 외교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같은 테러를 기리면서도 해석과 대응 방식이 확연히 갈리고 있습니다.
변화하는 위협, 흔들리는 안보 인식
9·11 이후 25년이 흐른 지금, 미국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의 테러가 아닌 내부의 폭력입니다. 로이터와 입소스가 실시한 최신 설문조사 결과, 외국발 테러를 가장 큰 위협으로 꼽은 응답자는 20%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무차별 총기 난사가 42%, 국내 테러가 33%로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났는데요. 미국인들의 안보 관심사가 외부에서 내부로 크게 이동한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 변화는 트럼프 행정부의 대테러 전략에도 반영되었습니다. 행정부는 지난 5월 발표한 대테러 전략에서 마약 카르텔과 국내 좌익 극단주의를 주요 위협으로 지목했습니다. 과거 이슬람주의 테러에 초점을 맞추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른 기조인데요. 전문가들은 중간선거를 앞두고 국내 안보 이슈를 부각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25주년 추모식이 보여준 것은 과거의 비극에 대한 공감대였지만, 미국이 직면한 위협에 대한 해법은 여전히 분열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