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데이터 법제화 속도 붙는데…안전장치 두고 설전
최근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헬스케어 및 보건의료정보 활용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두고 각계의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공청회에서는 의료 데이터의 활용 확대와 환자 안전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가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는데요. 법안은 보건의료 정보의 공익적 활용을 명확히 하고 5년 단위 기본 계획 수립, 전자의무기록 표준화, 정보 주체의 전송 요구권 보장 등을 골자로 합니다. 특히 정신질환과 같은 민감 정보는 별도 동의를 거치도록 해 권리 보호 장치를 마련한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반면 의료계는 데이터 활용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속도를 내기 전에 안전장치가 먼저 갖춰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 따라잡으려면 단일법 시급
학계와 산업계는 이번 법 제정이 시급하다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동국대 김재선 교수는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이 이미 의료 데이터 공유와 표준화를 법제화했음을 지적하며, 한국은 관련 규정이 개인정보보호법, 생명윤리법, 인공지능기본법 등에 흩어져 있어 연구 현장의 혼란이 크다고 설명했습니다. 여러 법률이 산발적으로 데이터를 규율하면서 일반법과 특별법의 관계가 모호해지고 용어 중복까지 발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이유로 데이터를 원활하게 활용하기 위해선 단일법을 통해 명확한 법률 체계를 세우는 게 우선이라는 겁니다.
산업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네이버 차동철 센터장은 의료기관의 적극적인 데이터 제공을 유도할 인센티브 구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고, 보건의료정책연대는 데이터 가치의 공적 환원과 기여환원금 제도를 통한 선순환 구조를 제안했습니다. 정부가 민간에만 맡겨두기보다 안전 조치를 갖춘 인프라 구축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환자 안전과 전문직 영역 지켜야 한다는 의료계
의료계는 데이터 활용의 긍정적 측면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몇 가지 선을 긋고 있습니다. 대한의사협회는 제3자의 무분별한 데이터 수집을 막기 위해 포괄적 전송 거부권과 의료진의 통제권 보장이 필수라고 밝혔습니다. 대한병원협회는 파편화된 전자의무기록 환경에서 데이터를 추출하는 데 드는 비용에 대한 정당한 보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특히 대한약사회는 AI 기반 복약 상담 서비스가 약사의 면허 행위와 겹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안전사고를 크게 우려했습니다. 이윤표 정보통신이사는 미국에서 AI의 잘못된 복약 설명으로 사망사고가 발생한 사례를 언급하며, AI 약물 비서 등이 전문 영역을 침해하는 행위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규정이 법안에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또한 전송 가능한 정보의 범위를 명확히 해 임상적 판단이 개입된 기록이 무차별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우려가 상당 부분 반영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전송 대상 데이터를 규격화된 정보로 한정해 의사의 내밀한 임상 기록은 제외했고, 건강정보 고속도로 시스템의 보안성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의료계와 산업계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메울지는 앞으로 국회 법안소위 심사 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다뤄질 전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