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이 높아야 하는 이유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도입한 재판소원 제도의 첫 번째 사전심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접수된 사건 중 심사가 완료된 26건이 단 한 건의 예외 없이 모두 각하되었는데요. 전원재판부로 넘어가 본안 심리를 받게 된 사건은 아직 없습니다. 이 결과는 재판소원이 단순히 ‘억울한 재판’을 다시 보는 제도가 아님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헌재는 사전심사 단계에서부터 재판소원 청구의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죠.
각하된 26건을 살펴보면 크게 세 가지 이유가 두드러집니다. 가장 많은 17건은 ‘청구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떨어졌습니다. 즉, 재판 결과에 대한 단순한 불만이나 사실관계 오류 지적만으로는 기본권 침해를 주장하기에 부족하다는 판단입니다. 다음으로 5건은 재판 확정 후 30일 이내에 청구해야 하는 기한을 넘겼고, 나머지는 상고 같은 다른 법적 구제 절차를 먼저 거치지 않은 ‘보충성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납북어부 사건이 보여준 기준
각하 사건 중 가장 주목을 받았던 것은 ‘재판소원 2호’로 접수된 납북 귀환 어부 유족의 사건이었습니다. 유족들은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원심 판결의 취소를 요구했으나, 헌재는 대법원 상고를 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며 각하했습니다. 유족 측은 소액사건이라 상고 가능성이 희박해 포기했다고 설명했지만, 헌재는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죠.
이 판단은 재판소원이 ‘마지막 보루’이기 전에 ‘모든 다른 길’을 먼저 걸어봐야 하는 제도임을 재확인시킵니다. 독일 등 해외 사례에서도 재판소원의 인용률이 1% 미만으로 매우 낮은 것은, 사전심사 단계에서 이미 실질적인 검토가 이뤄지고 엄격한 요건이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재판소원이 사법 체계를 뒤흔드는 ‘쉬운 인용’의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습니다.
변호사들의 전략은 바뀐다
이런 결과는 법조계의 실무에도 즉각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재판소원 제도 시행 이후 접수 건수가 150건이 넘으면서, 로펌들은 이미 대응 전략 세미나를 열어 실무적 논의에 본격적으로 돌입한 상태입니다. 가장 많이 제기되는 조언은 ‘1심 첫 변론부터 재판소원을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는 1심 단계부터 재판 과정에서 특정 기본권이 어떻게 침해되었는지 주장을 공식 기록에 남기고, 항소 및 상고 이유서에 ‘헌법 위반(기본권 침해)’을 별도의 사유로 명시적으로 추가하는 전략이 효과적이라고 분석됩니다. 이렇게 해야 나중에 재판소원을 청구할 때 “당시 법정에서 이미 이 문제를 제기했다”는 근거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죠. 현재 심리 중인 시리아인 강제퇴거 명령 사건(1호 사건)을 포함해 많은 사건이 아직 심사 대기 중인 만큼, 앞으로 헌재의 판단은 변호사들의 소송 전략 자체를 재편하는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헌재의 엄격한 초기 행보는 제도 정착기의 혼란을 막고, 재판소원이 진정한 헌법적 구제 수단으로 자리 잡도록 하는 과정으로 읽힙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높은 문턱이 국민의 기본권 구제에 실질적인 장벽이 되지 않도록, 제도 운영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과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